출근하자마자 읽은 컬럼. 꽤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는 기사다. 실제로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게임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들에게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자신의 생활을 내팽개쳐두고 게임에만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나 스스로도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게임에 푹 빠져 있었지만 히키코모리가 되지는 않았었다. 매일 밤마다 게임 속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현실 세계에서 술독에 빠져 있긴 했지만...
세부적인 예들은 모두 공감할 수 없고, 과연 게임 속에서의 '사회성'이라는 것이 본문의 내용처럼 '아주 바람직한' 것은 아닐 지라도 글 전체를 흘러가는 맥락, 즉 '게임에 빠진다고 해서 사회성을 잃고 방구석 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게임을 시작했다. 하루 최소 6시간에서 최대 24시간 게임을 했다. 42시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게임을 한 적도 있었다. 군주가 되고 보니 아무리 졸려도 의무적으로 게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을 마치고 주머니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면 "부재 중 통화 28통이 있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온라인 게임이 현실 도피를 하기에는 너무 사회적인 매체임을 깨달았다. 차라리 알코올 중독을 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정치의 동향, 철저하게 합리적인 시장질서는 나에게 시시각각 진짜 현실을 환기시켰다. 게다가 게임 안에서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그들이 나를 자폐적 몰입 상태로 놔두지 않았다. 조금만 무리하면 사방에서 귓속말 채팅이 날아왔다.
"형님, 새벽 5시 반인데 아직도 안 주무시면 어떡합니까? 강의 안 해요?"
"오빠, 나이 사십이 젊다고 생각하면 완전 착각이야."
"동생, 현실의 일을 우선해야지. 그러다가 학교 잘리면 어떡하려고."
이러는 동안 건강은 확실히 나빠졌다. 근 3, 4년 동안 하루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고혈압이 생기고 요통이 생기고 오른쪽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생겼다. 반면 나는 이 기간에 비범하고 매력적인 동시에 아주 겸손하고 인간적인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함께 온갖 파란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처리 능력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무엇보다 게임을 하면서 너무 많이 웃고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했을 당시의 우울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현실 도피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 한국 온라인 게임 문화와 게임 과다 사용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이미 도래한 가상 공간과 온라인 문화를 부정하고 그 역기능만을 지속적으로 부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가 아직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경향성의 표출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가 막 대중화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새로운 매체에 열광하는 '초창기 기술 효과' 때문에 확실히 병리 현상이 심각했다. 인터넷에 과도하게 몰입한 자녀 때문에 많은 가족 간 갈등이 나타났다. 이런 자녀들은 학업 능력 저하, 불면과 식욕 감퇴, 현실 구분 장애, 금단 증상, 일탈 행동 등을 드러냈다. 골드버거와 영, 브레너 같은 정신의학자들에 의해 '인터넷 중독 장애' 연구가 체계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프로작'이나 '졸로푸트' 같은 항우울제가 게임 중독 치료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6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젊은이에게 디지털 게임은 시계나 자동차처럼 자연스러운 환경의 일부가 되었고 인터넷은 밥이나 옷과 같은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 사용자를 정상인과 병적 인간으로 나누는 '중독(addiction)'이라는 용어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는 게임의 과다 사용(over-use)은 있지만 중독은 드물다고 말할 수 있다. 가상 공간을 지배하는 건전한 사회적 압력이 한 개인을 중독자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제시된 게임 중독 이론은 한국의 가상 공간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과다 사용자들은 미국의 '너즈(Nerds)'나 일본의 '오타쿠(Otaku)' 같은 콘솔 게임 중독자들과는 정신세계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에티엔 바랄의 지적처럼 콘솔 게임 중독자들은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기술적 자폐의 세계에 살면서 독립적인 내밀감을 확보하기 위해 게임을 한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히키코모리(방구석 폐인)'라 부른다.
그에 반해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사용자들은 가상 공간에서 형성된 공동체의 인정과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이고 친교 지향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현모(현실모임)를 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즐긴다. 방만한 헤어 스타일과 면도 안 한 지저분한 얼굴로 현모에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남녀 모두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깔끔한 차림으로 나타난다. 오타쿠나 너즈와는 외모부터 내면까지 모두 다르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과다 사용은 중독이 아닌 스토리텔링의 '통과제의(Initiation)' 체험에 가깝다. 사용자들은 친근하고 평범한 현실세계에서 분리돼 가상 공간의 낯설고 이상한 세계로 들어간다. 그들을 그곳으로 이끄는 것은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희망에 따라 행동하는 완전한 인간 정신이다.
그 낯설고 이상한 세계에서 사용자는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고통스러운 성장의 단계를 하나하나 통과하면서 때로는 칼에 찔려 죽고 때로는 사지가 절단돼 죽는다. 그 시련이 가혹하고 고통스러울수록 용기와 지혜에 대한 통찰은 더욱 확고해진다. 사용자들은 마침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 세계로부터 어떤 정신적 전리품을 들고 현실 세계로 귀환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신비하고 정복되지 않는 힘과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이다.
글=이인화 교수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소설가
취재 및 연구보조=신새미.임하나
청소년에 대한 충고
내년엔, 또 10년 후엔 … 더 멋진 게임 나올 것
지금 게임에 집착 말자
온라인 게임 초창기의 가상 공간은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곳은 악담, 모욕, 욕설 등의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담론들이 넘치는 익명적 경쟁의 공간이었다. 레벨의 차이는 절대적이었고 사용자들은 레벨을 올려 뽐내고 싶은 무분별한 지위 상승 경쟁으로 시간을 소모했다.
온라인 게임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런 부정적 양상들은 많이 사라졌다. 그동안 한국의 사용자들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상 공간을 더 아름답고 더 정의롭고 더 사려 깊은 세계로 가꾸어 왔다.
실제 장애인을 빈정댄 유저에 대해 계정압류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고(2002년 11월), 여성 유저에게 음담패설을 한 유저에 대해 역시 계정압류를 요구하는 시위(2003년 1월)가 있었으며, 독재 권력으로 사냥터를 통제하는 지배혈맹을 민중의 힘으로 타도한 혁명(2004년 5월)이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상 공간은 엄격한 예절과 윤리가 요구되는 세계로서 청소년의 사용에 교육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학업에 몰두해야 할 청소년기의 게임 과다 사용은 정상적인 자기 개발의 위험 인자가 된다. 아래의 통찰은 지나친 경쟁심과 성취욕구로 게임의 과다 사용에 빠져든 청소년에게 주고 싶은 충고다.
① 가상 공간에 지존은 없다=가상 공간은 콘솔 게임 같은 자폐적 영웅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최고 레벨이 되고 모든 스킬을 배우고 마우스를 1초에 4번 찍으며 캐릭터를 이동시킬 수 있어도 예의를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으면 맞아 죽는다. 살아있는 사람이 움직이는 가상 공간에서는 1명이 10명을 당할 수 없다. 레벨 업에 몰두해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② 가상 공간에 대박은 없다=청소년들은 좋은 아이템에 목을 맨다. '요구르팅'에서 피닉스 너클 같은 장갑을 얻으면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화려한 타격감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러나 가상 공간의 욕구 성취는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 아이템이 대박이라고 느껴지는 그 공간 밖에는 더 상위의 공간이, 그 공간 밖에는 다시 더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공간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템에 욕심을 내는 것은 바보짓이다.
③ 게임은 죽을 때까지 할 취미생활이다=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죽을 때까지 게임을 할 세대들이다. 그러므로 게임의 캐릭터와 현실의 자기 자신을 함께 키워야 한다. 지금은 그들이 하고 있는 그 게임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이지만 내년에는 더 멋진 게임이 나올 것이다. 10년 후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멋진 게임이 나올 것이다. 이 게임만 하고 죽을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