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의 마지막날의 전날. 전주비빔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이름만 '전주비빔밥'인 것 말고, 정말 전주에서 먹는 비빔밥. 그래서 꼭두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했다. 전주로... 정말로 갑작스럽게.
오전 7:10. 서울발 전주행 고속버스. 소요시간은... 놀랍게도 2:30. 그러니까 '전라도'는 굉장히 먼 곳이라고만 생각했단 말이다. 헌데 의외로 전주는 굉장히(?) 가까운 곳이었다. '코호, 그렇군. 전주는 별로 먼 곳이 아니군!'이라는 생각. (지금 버스 승차권을 살펴보니 202.6Km다. 별로 가까운 곳은 아니다. --;;)
사실 7:00 정도에 출발한 것은 전주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버스 시간 기다리고, 차 막히고 어쩌고 하면 전주에
12시 즈음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배차되어 있었고, 걸린 시간은 2시간 30분. 결국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도착. 시간이 엄청나게 생겨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전주에 내려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렌트. --;;; 남아도는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발이 필요했다. 터미널 근처에서 소나타 한 대를 렌트(더 작은 걸로 하고 싶었지만 차가 없었다. ㅠㅠ), 이걸로 행동 반경은 전주 시내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전역으로 넓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남아버린 시간들을 잘 써먹을 수 있게 된 것!
우선은 생각해둔 코스대로 움직였다. 일단 경기전 근처의 한옥마을로 갔다. 그 입구에 있는 전동 성당도 꼭 보고 싶은 곳이었다. 전주천 근처에 (무단) 주차를 해두고 천천히 걸었다. 아침 햇살은 아직 따뜻하지 않았고, 바람은 차가왔다. 하지만 낯선 곳을 걷는다는 느낌은 신선했고, 아침 시장(전주 중앙시장 근처였다)의 기운도 솔솔치않게 느낄 수 있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전동 성당은... 참 좋은 곳이었다. 마침 일요일 아침 미사가 진행중이라 결례를 무릅쓰고(?) 미사를 드리는 모습까지 구경하고 나왔다. 스테인드 글라스(그냥 유리에 그린 그림이던가?)에는 특이하게도 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휘갈겨쓴 글자체로 이름이 써 있는데, 그 역시 한국 이름이다. 예를 들어 '성 김철수' 같은 식이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아마도 순교자들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런 특이한 점들 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아주 충실하고, 꾸밈없고, 기교 부리지 않은 아름다움 떄문이었다. 아주 정직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로마네스크 양식이 '정직하다'는 뜻이 아니라, '로마네스크란 이런 것이다'를 그대로 보여준달까) 기분이었다. 여기에 차근차근 살을 붙여 나가고, 아름답게 치장하면 고딕 성당이 되는... 그런 느낌. 아주 작은 곳이지만, 벽돌 하나하나 허투루 놓이지 않은 그런 충실함. 뭐랄까... 그런 것이 느껴져서 아주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세 가지 중 첫 번째.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셔둔 곳이다. '왕에게 지내는 제사'에 쓰이는 음식을 만들거나 제기를 보관하는 건물들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다른 곳에서 봤는데 눈여겨 보지 않았을 수도 있긴 하다). 전주 한옥마을은 말 그대로 한옥 집성촌인데... 뭐랄까 서울의 인사동 같달까? 이미 상업적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은 전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물들어갔다는 느낌보다는 관주도로 진행된 상업주의 같아서 더욱 씁쓸했다.
대충 이만큼 둘러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전날 미리 찾아둔 비빔밥 집 또한 한옥마을 근처에 위치. 바로 종로회관. 겨우(?) 비빔밥 집일 뿐인데, 무슨 홈페이지가 이렇게도 화려한가! 그래도 몇몇 맛집 카페에서 검색해본 결과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길래 이 집으로 가기로 했다. 결과는? 와우! 이렇게 맛있는 콩나물국이! 그렇다. 비빔밥보다도 콩나물국에 필이 꽂혀버렸다. 색하며, 맛하며, 향기하며... 어떻게 그런 콩나물국을 끓일 수 있을까? 그리고 역시 남도는 반찬 가지수가 많구나(젓가락이 막상 가는 곳이 적다고 하더라도). 비빔밥에 대한 감상은? 글쎄... 분명히 맛있긴 한데, 감동적이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 풍남문을 구경하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참, 풍남문 앞에는 12월 31일 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도 비슷한 풍경이었겠지. 물론 규모는 많이 차이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12월 31일에 난 일부러 200Km 남쪽으로 내려가서 전주에 있었다는 얘기다. 흠흠.
출처 : 네이버 테마 백과사전
차에서 관광지도를 살펴보다가 결정한 다음 목적지는 마이산. 탑사의 사진을 보고 '이걸 봐야 한다!'고 느꼈다. 그냥 느꼈다. 느꼈음 가는 거다. 전주를 출발해 진안으로 향했다. 대략 30분 정도 국도를 달리니 진안이다. 멀리서 본 마이산의 첫 인상은 참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그 생김새가 참 특이하다. 그래서 그런지 비범한 기운을 가졌을 것만 같았다. 어쨌거나 차를 주차하고 등산 시작.
사실 털레털레 산책하면 될 줄 알았다. 애초에 등산 같은 건 계획에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꽤 가파르다. 등산로는 계단으로 잘 닦여 있긴 하지만... 힘들다. 탑사 가는 길에 화엄굴이 있다. 잠깐 구경했더니... 뭐 그다지 신기한 것은 아니다(동굴이라는 것을 별로 못 보긴 했지만). 헌데 뒤 돌아 나올 때 장관이 있다. 카메라가 없었던 것이 대유감.
출처 : http://blog.naver.com/cap205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그만 힘이 다 빠져버렸다. 탑사까지 1km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다녀오면 탈진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 결국 뒤돌아 마이산을 내려왔다. 다시 차를 돌려 전주로. 하지만 전주에서 구경할 것은 이미 오전에 다 해버렸는 걸?
지도를 살펴보다가... 지도를 살펴보다가... 결국 변산반도로 이동하기로 결정! 부지런히 서둘러서 해보다 빨리 변산반도에 도착해 격포에서 해넘이를 보자는 생각!! 부지런히 부안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참고로 렌트한 차에 네비게이션 따위는 없었다. '관광정보 안내센터'에서 나눠주는 그림지도로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얘기! 대단하다!!!
진안에서 부안까지의 예상 소요시간 2시간(어째 서울-전주 정도 걸리냐 -_-;;). 부안에서 격포까지 예상 소요시간 30분. 진안을 출발해 전주에서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부안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 정말 부지런히 밟았다! 결코 과속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해보다 빨리 바닷가에 도착해야했다. 부안에서 변산반도를 접어들면서 격포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더니... 아뿔사. 그렇다 그날은 2006년의 마지막날. 마지막 일몰을 보러 몰려온 차들로 길은 꽉 막혀 있었다. 길에서 흘러가는 시간. 넘어가는 해. 동동 구르는 발.
결국 갈림길에서 내소사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그러니까... 부안읍에서 내소사 방면으로 23번 국도를 따라 갔다는 얘기(지도 펴서 잘 살펴보면 어딘지 알 수 있다. --;;;) 그리고 그 길에서 올해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차는 한 대도 없이 뻥 뚫린 국도를 달리며, 산을 넘어가는 올해의 마지막 해. 그리고 그 길 또한 얼마나 아름답던지... 2006년의 마지막 태양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이브. 쩝. 운전하는 사람은 그걸 제대로 못 본다는 큰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 곳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중 두 번째!!
괜히 예전에 찍은 일출 사진 한 장 첨부 (photo by zzoos)
다시 23번 국도와 30번 국도가 다시 만나는 곳에서 젓갈로 유명한 곰소 방면으로 길을 틀었다. 염전도 보이고... 이제 제대로 바닷가의 향기가 난다. 그리고 모항 근처에서 이젠 더 이상 늦으면 '전혀' 해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차를 세우고 잠깐 바다를 바라봤다. 정말 마지막. 어둑어둑한 기운마저 사라지려는 그 때. 참 많은 생각과 아쉬움 같은 것들을 끌어 안고 해는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다. 2006년의 마지막 해는...
어둠을 뚫고 격포에 도착. 꽃게탕을 먹었다. 별로 맛이 없었다. 중간에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새우라도 좀 더 넣어주까요? 요즘 꽃게가 냉동이라... 차라리 생선 매운탕이 나은데..." 아니 그럼 시키기 전에 말씀해 주셔야지욧!!! 어쨌거나 남도 음식이라 그런지 반찬 가짓수는 참 많다. --;;;;
저녁을 먹고 차를 반납하기 위해 다시 전주로. 길이 어두워져 버려서 중간에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모르는 길 속도 내는 것도 위험할 것 같아서 천천히 천천히. 전주에 도착한 것은 저녁 10시. 왠지 하루만에 전주가 내 집같아진 느낌. 차를 반납하고 23:00 고속버스 탑승.
2007년 1월 1일 0:00. 창밖엔 어둠만이 가득한 고속버스 안에서 2007년의 새해를 맞이했다. 잠들어 있던 그대의 이마에 살짝 키스. 이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세 가지 중의 마지막.
무박 1일의 여행. 하지만 엄청난 여행. 즐거웠고, 행복했고, 맛있었다. 2007년이 기대된다.
그리고 결심. 변산반도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소사와 변산반도를 다시 한 번 제대로 돌아보고 와야겠다는 생각. 그 때에는 익산에서 렌트해야겠고 내가 운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