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에서 동갑내기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신년회 비슷한 자리였죠. 그 중에 한 친구가 '새해도 됐는데 벌쓰빈(Birth Vintage, 자신이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와인을 가리키는 은어??) 한 병 마시자!'라고 얘기를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마어마하게도 Ch. Margaux 1975를 저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오 마이갓!
아래는 그 날 마신 와인 리스트입니다. 장소는 논현동의 달콤한 코르크 나무 2 였고, 총 참석 인원은 드리머, 농민군, 혈월, 크로스, 카스, 포도, 구급공뭔으로 7명이었습니다.
Cremant de Bourgogne Dom Vincent N/V (사진 없음) Chateau Margaux 1975 Chateau Mont-Perat, Premieres Cotes de Bordeaux 2005 Chateau d'Arcins, Haut-Medoc 2000 Tenimenti Angelini Brunello di Montalcino Val di Suga 2001 Vistalba Corte A 2004 TRIO (사진은 왼쪽 위부터)
맨 처음엔 Dom Vincent을 마셨습니다. 시원하게 칠링한 클레망은 확실히 기분이 좋습니다. 헌데 이 날은 특유의 고소하고 씁쓸한 향이 나지 않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많이 평범한 스파클링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살짝 아쉬웠어요.
다음으로 Chateau Margaux 1975. 우선 보르도 그랑크뤼는 두 번째 마셔보는 거였습니다. 첫 번째는 라뚜르 90이었죠. 헌데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았었는지 제대로 피어나지 않고 살짝 모습을 보여주려다가 말아서 섭섭했었습니다. 70년대의 마고는 워낙 혹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썩어도 준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고'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살이 있구나'라는 느낌이랄까? '올드 빈이란 이런 것일까?'하는 느낌만 살짝 받았습니다. 네,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그 긴 세월을 지났는데도 잔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이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략 2시간? 정도 뒤에는 물처럼 변해버렸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다른 친구는 그 시간 이후에 또 피어 오르더라고는 하더군요.
Mont-Perat는 역시 가격에 비해 매우 훌륭한 와인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신의 물방울이 나오기 전에 젤 사장님의 추천으로 마셔봤었는데... 사실 '전혀' 기억이 안나서... 이 날 처음 마신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1시간 30분 정도 디캔팅을 했죠. 구수한 향(정말 누룽지 같은 향)이 처음에 치고 올라오는 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로 초컬릿 향도 나고요(카카오 향이라고 하라더군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 -0-). 타닌은 완전히 동그랗게 수그러 들어서 엄청나게 마시기 좋았습니다. 절대 어린 와인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아주아주 굳!!이었습니다. (절대 제가 가져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d'Arcins 역시 맛있었습니다. 밸런스가 좋았어요. 타닌도 살짝 느껴지면서 향도 풍부했고. 빈티지도 훌륭하게 2000년. 마음에 들었던 와인입니다.
마신 순서는 사실 좀 헷갈립니다. 전부 한 꺼번에 열어놨기 때문에. 그 중에 가장 신맛이 튀었던 것이 BDM이었죠. 역시 이탈리아 와인이었습니다. 힘도 있고, 산미도 강하고. 입맛이 쫙쫙 당기게 만들어 줬습니다.
맨 마지막에 마셨던 것이 Vistalba 였군요. 아르헨티나의 말벡이었습니다. 이틀이나 지난 다음에 맛을 떠올리려고 하니 좀 힘들긴 합니다만, 굉장히 무난한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 이날 마셨던 와인들이 희안하게도 다 괜찮았어요. 제가 가져간 것 외에는 가격대는 잘 모르겠긴 합니다만...
아, TRIO는 제 취향이 아니긴 했습니다. 좀 달더군요. 까쇼, 쉬라, 까베르네 프랑을 블렌딩 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Concha y toro의 와인이라고 하더군요. 뭐 그런 것 들어도 잘 기억도 못하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단 맛이 많이 느껴져서 많이 마시지 않았습니다.
2차는 순대, 족발, 소주 3차는 김치찌개, 돼지고기, 소주 4차는 데킬라 슬래머.
4차에서 필름이 끊어졌습니다. 집에서 눈을 뜨고 있는 저의 모습. 가방을 확인하고 특별히 잃어버린 물건이 없다는 것에 안심. 그러다가 그날 입었던 외투를 보고는... 아뿔사. 한 건 저질렀습니다. 누가 내 옷에다가 담배를 떨어뜨렸더군요. 옷 한 벌 해먹었습니다. 새로 산 지 얼마 안되는 옷인데... 에혀.
어쨌거나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단, 술을 적당히 -0-
마지막으로 새로 산 카메라로 찍은 샤토 마고 레이블 한 장 올립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와인을 언제 또 마셔 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