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리스트를 봐도 뿌듯합니다. 2등급 그랑크뤼가 4병.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 군요. 그리고 시음회가 끝난 다음 와인을 좀 더 마셨습니다. 내용 읽어보면 나오지만서도 리스트만 따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Leroy Bourgogne 1999 William Fevre Chablis Premier Cru 'Montmains' 2005 (→)
이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 입구입니다. 멀리 화면 구석을 잘 보시면 어딘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리가;;;
거의 정각에 맞춰 도착했는데, 안 오신 분들이 좀 있더군요. 위치가 꽤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갈한 테이블 세팅과 스탭분들이 만들어주신 정말 두툼한 자료. 사진을 제대로 찍진 못했지만 포크와 나이프가 예쁘게 생겼습니다.
예쁘게(?) 나열된 와인 병들과 코르크들입니다. 곧 다 우리들의 뱃속으로 들어갈 녀석들이긴 합니다만... 아! 코르크나 병을 먹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샤토 몽로즈. 빈티지만 봐도 짐작이 오시겠지만 엄청나게 딱딱했던 녀석입니다. 모임이 다 끝나고 일어날 때까지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군요. 마지막에 일어날 때 남은 것을 마실 때 아주 살짝 향이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만, 디캔팅 없이 병드리딩만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마시기는 힘든 와인이었습니다. 지금 마시려면 도대체 몇 년 빈티지를 열어야 하는 걸까요? 그걸 국내에서 구할 수 있긴 할까요?
여튼 딱딱함의 전형을 보여준 녀석.
99년이면 약 9년이 흘렀죠? 하지만 여전히 강건합니다. 몽로즈와 비슷하게 안 열리더군요. 그나마 조금 먼저 열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습니다. 그래봐야 제 막혀와 막코는 제대로 된 향을 구별할 줄 모르는 상태. 연짱 달리면 이렇게 됩니다. 중요한 시음회가 있을 때에는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됩니다. 아암요. 와인을 마실 때는 와인의 컨디션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컨디션도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이 시음회가 벌써 시간이 좀 지나버려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오기가 좀 힘들긴 합니다만, 제 기억이 맞다면 이 녀석은 앞의 두 녀석들보다 훨씬 질감도 가볍고 바디도 가볍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꽉! 닫힌 느낌도 아니었고요. 두 녀석이 워낙 마시기 힘들었다보니 상대적으로 이 녀석이 마시기 좋았다는 기분이네요.
이 날 시음회의 최고 인기는 바로 브랑 깡띠냑이었습니다. 2003이면 꽤나 어린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병브리딩만으로 활활 피어오르더군요. 역시 마고라서 일까요? 입안에 넣으니 동글동글한 타닌의 부드러운 느낌. 커피향이나 말린 과일 같은 향도 있는 것 같고... 향은 저에겐 아직 좀 잡아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연습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부분;;;;
하지만 이런 쉬운 느낌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게다가 몽로즈는 열리지도 않았는데 이 녀석은 자빠지기 시작합니다. 타닌이 더 거칠어 지는 것 같더니만 이내 향까지 쭉 빠집니다. 그건 좀 실망스러웠어요. 어쩌면 너무 긴 시간의 병 브리딩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가 말해주더군요. 브랑 깡띠냑은 역시 따자마자 마셔야 되는 건가?
위의 뿌이페레보다 훨씬 더 가벼운 느낌이었습니다. 모까이유는 아마 제 기억에 그렇게 남을 것 같습니다. 물처럼 엷은 와인. 네, 물론 상대적인 느낌이겠죠. 하지만 이날의 모까이유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병마다 컨디션이 제각각이었다고 하더군요. 다행이도 제가 마신 병은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다고는 합니다만, 마시기가 참 편했다는 느낌 외에는 머리에서 꺼낼 게 없습니다.
음... 하나하나의 와인에 대한 코멘트를 적어보니 마시고 나서 바로 느낌을 적어두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간밤의 꿈이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회사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에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잖아요? 물론 시음회가 꿈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신뢰도가 너무 낮으니까요. 희안한건 국민학교때 짝사랑했던 여자애와 나눴던 얘기는 대사까지 그대로 기억이 난다는 겁니다. 그러고보면 돔페리뇽 1996을 처음 마셨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어쨌거나 음식 사진으로 넘어갑니다. 와인에 신경을 많이 쓴 만큼 음식엔 신경을 좀 못썼다고 스탭분들이 그러시더군요.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충분히 감안하고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와인들 덕분에 괜찮았습니다.
빵입니다. 귀엽게 생긴 빵. 버터를 담는 그릇이 예뻤는데, 못 찍었군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파스타. Tomato mussel spaghetti. 먹던 도중에 찍은 건 아닙니다. 아마 1/2 인분으로 준비가 된 모양입니다. 맛은? 면은? No Comment.
이날 가장 맛있었던 메뉴입니다. Potato Cake 라고 이름은 붙어 있는데, 감자를 겹겹이 붙여서 (페스츄리처럼) 구워낸 요리입니다. 헌데 아무런 장식도 소스도 없으니 좀 심심하긴 하네요.
Duck leg confit with mustard sauce. 네. 저 오리고기 잘 못먹는데, 메인이 오리네요. ㅠㅠ 조금 먹다가 결국 냄새에 포기하려고 했지만, 역시 시장을 이기는 장사는 없더군요. 거의 다 먹었습니다. 후후훗.
마지막으로 나온 커피. 이름표를 커피잔에 붙였습니다. 이로써 커피공뭔쓰 탄생. 흠... 아이디가 왜 zzoos가 아니고 구급공뭔이냐고요? 그건 언제 포스팅을 따로 한 번 해야겠네요. 여튼 저의 또 다른 닉네임 하나는 구급공뭔(또는 구급공무원)입니다.
사실 위에 사진을 쭉 올린 봉에보(Bon et Beau)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레스토랑 중 한 곳입니다. 단, 저희가 모임을 가졌던 날은 인원도 워낙 많았고, 예산도 넉넉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또, 오픈한지 얼마 안되서 단체 손님을 맞이해본 경험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수로 다녀오신 다른 분들의 의견은 아주 괜찮은 곳이라는 평가가 더 많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다시 가 볼 생각입니다. 그때 좋은 인상이 남았으면 합니다.
모임을 마치고 2차로는 한남동(순천향 병원 맞은편 2층)에 있는 '야스라기'라는 집으로 갔습니다. 에비수 맥주를 파는 집입니다. 쌉싸름한 그 맛이 가끔 생각납니다. 사실 국내에서 에비수 맥주를 파는 집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안주도 맛있는 편이고요.
이이치코도 한 병 시켰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녀석 보리 소주죠? 엄청난 양의 술과 안주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가 우리의 뱃속으로 사라집니다.
야스라기는 10시까지만 영업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도 배가 고프고 술이 고픕니다. 근처의 감자탕 집으로 옮깁니다. 계속 술이 들어갑니다.
결국 결국... 최후의 5인은 여의도에 사는 모회원의 집으로 쳐들어갑니다. 그리고 셀러를 열어 제낍니다. 이런! 셀러엔 와인이 딱 4명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병은 절대 열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합니다. 그래서 아래의 와인들을 열었습니다.
그 외에도 리즐링을 하나 더 열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사진도 없고 기억에도 없습니다;;;
겉 보기에는 엉망인 것 같지만 컨디션이 참 좋았던 와인이었습니다. 열자마자 향이 바로 올라오더군요.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편하고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던 피노누아. 어떤 사람은 '오늘 마신 와인 중에 제일 낫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0-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마셔보는 윌리엄 페브르의 몽맹. 사실 화이트 와인의 그랑 크뤼는 마시기가 쉽지 않죠. 그 가격이면 레드를 사려고들 하니까. 그래서 처음 마셔보고 놀랐던 것이 푸르숌(1등급), 몽맹(2등급), 레 클로(2등급)였습니다. 특히 푸르숌은 그 엄청난 바디감에 놀랐고, 레클로는 제 맘에 쏙 들었었죠. 하지만 몽맹도 참 맛있는 샤블리입니다. 그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요. 참 반가웠습니다.
이날 마셨던 와인 리스트 중에 유일한 화이트라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그러고보면 요즘 전 화이트에 점점 빠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복 지리로 해장을 하고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정말이지 참으로 기나긴 하루가 아니었을 수 없습니다. 글 읽는 여러분도 힘드실텐데, 전 오죽했겠습니까요? 이렇게 참 즐겁고 신났지만 길고 힘들었던 주말이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