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올해는 윤년이었습니다. 그래서 2월 29일이 있었죠. 바로 그날. 신사동의 조그만 와인바인 엘 오소(El Oso)에서 지인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엄청난 와인들을 마셔댔죠. 이번엔 주로 신세계 위주의 와인들이었습니다.
Villa Maria Cellar Selection Pinot Noir 2005, Marlborough (Newzealand) (→) Matetic EQ Pinot Noir 2006, San Antonio (Chile) (→) Overstone Pinot Noir 2006, Hawkes Bay (Newzealand) (→) Pago De Los Capellanes Joven Roble 2006, Ribera del Duero (Spain) (→) Majella Sparkling Shiraz 2005, Coonawarra (Australia) (→) Castillo de Montblanc Cava Brut NV (Spain) (→) Maison Chanson Aloxe-Corton ????, Cote de Beaune (France) (→) St. Urbans-Hof Riesling 2004, Mosel-Saar-Ruwer (Germany) (→) Konrad Sauvignon Blanc 2006, Marlborough (Newzealand) (→) Finca La Celia Late Harvest 2004, Uco Valley (Argentina) (→) Chateau d'Yquem 1999, Sauternes (France) (→) Marchesi de' Frescobaldi Brunello di Montalcino Castelgiocondo 2003 (Italy) (→)
마지막엔 쿠쿵! 샤토 디켐이 나오더군요. 아이쿠 깜짝이야! 난생 처음 맛 본 샤토 디켐은...... 황홀했습니다. ♥.♥
그나저나 정리해보니 요즘 한 번 모였을 때 마시는 와인의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의 숫자도 많긴 했지만, 하루에 12병이라뇨. 다 기억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하죠. -0-
자 그럼 사진 갑니다.
제가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빌라 마리아 피노를 막 따셨더군요. 일단 한 잔 마셨습니다. 부담없는 이 느낌.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실만한 와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뉴질랜드의 쏘비뇽 블랑과 피노누아는 확실히 호감입니다.
레이블은 많이 봤지만, 처음 마셔본 EQ 피노. 그러고보면 칠레의 피노는 처음 마셔봅니다. 절대 가벼운 느낌은 아니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바로 옆에 깔끔한 코르크도 보이네요.
예쁜 레이블의 오버스톤 피노. 위의 세 가지 피노 중에선 가장 나았던 느낌입니다. 아마도 순전히 레이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보기에 좋아야 먹기도 좋은... 이라고 말하기엔 레이블과 맛은 상관이 없을지도;;;
꽤 오랜만에 마신 스페인 와인입니다. 생산자는 처음 보는, 이름도 긴 파고 데 로스 까베야네스. '틴토 피노'라는 품종이 80%, 까쇼가 10%, 멜로가 10% 블렌딩 됐다고 합니다. 틴토 피노는 템프라닐료의 변종이라고 하는데, 마시기 편안한 와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연하게도(?) 한달이나 지난 지금 정확한 맛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호주의 스파클링 쉬라인 마젤라. 이전에도 스파클링 쉬라를 마셔본 적은 있습니다만 이것보다 훨씬 달고 눅눅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훨씬 드라이하고 가볍습니다. 이 와인 마음에 듭니다. 뱅뱅사거리 아래쪽의 와인 갤러리에서 약 7만원대에 파는 걸로 확인. 쉽게 마시긴 힘들듯합니다. ㅠㅠ
제가 준비해간 까스띨로 디 몽블랑 브뤼. 이만한 가격대비 성능을 보여주는 스파클링은 몇 가지 안되죠. 싸고, 맛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녀석 중 하나죠. 바에 가서 마셔도 5만원 이하. 샵에선 훨씬 저렴하겠죠? 하지만 그 상큼함과 가벼움이 너무 마음에 드는 녀석입니다. 흠... 다른 와인들에 비해서 가격이 너무 저렴했나;;;
이 날 음식은 엘 오소의 사장님이 알아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브리또와 파스타, 샐러드, 돼지고기 바베큐와 새우 구이. 음식 사진은 찍기 쉽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만, 먹기 좋게 구워지고 있는 새우는 찍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제가 새우 킬러잖아요. 참, 이 집의 브리또는 정말 맛있습니다. 파스타는 보통. 바베큐를 먹기 위해선 미리 예약할 때 주문을 해야 합니다. 작지만 친절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 집이죠. 다음엔 실내 사진과 음식 사진도 찍어 와야 겠습니다.
메종 샹송의 알렉스 꼬르동. 알렉스 꼬르동 지역의 와인은 처음 마셔봤습니다. 맛이 제대로 기억 안나는 것이 한스럽네요. 아, 가끔 프랑스 와인들을 마시다 보면 생산자 이름에 Pere & Fils 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아빠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부샤 뻬레필스라던가 샹송 뻬레필스 같은 것 말이죠.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덕칠이네 부자' 정도 되려나요?
독일산 리즐링도 마셨습니다. 생 우반스 호프였죠. 리즐링은 확실히 제 취향의 품종은 아니긴 합니다만, 언젠가 관심을 가지고 마셔보고 싶긴 합니다. 예전에 알자스의 리즐링 중에 제 마음을 확 잡아 당겼던 녀석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게 도대체 어떤 녀석이었는지 다시 찾아 내야겠죠.
그 옆에 제대로 레이블을 찍지 못한 녀석이 하나 있네요. 제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입니다. 이번에 처음 마셔보는 코나드. 역시나 한결같이 마음에 듭니다. 역시 저의 훼이보릿 품종.
많이 흔들렸지만, 그냥 올려봅니다. 아르헨티나의 레이트 하베스트. 자리가 막바지로 흘러간다는 뜻이겠죠? 그 달콤함을 즐기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게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에 디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저한테까지 차례가 안오면 어떡하나요. 후딱 마셔버리고 잔을 깨끗히 씻어서 대기해야죠.
드디어 대망의 샤토 디껨 1999. RP 92점이군요. 소떼른의 1등급 와인들은 기로, 리우섹, 쉬뒤로 같은 걸 마셔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엄청나게 맛있었어요. 그렇다면 특등급인 디껨은??? 정말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마셨습니다. 좋더군요. 향도 좋았고, 맛도 멋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아한 단맛이라니요. 헌데 그것도 충분히 열린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정신없는 와중에 마셔버린 것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쉬뒤로나 기로 같은 녀석들도 충분히 좋았는데... 가격 차이는 얼마나 나는 거지? 만약 많이 차이 난다면 차라리 1등급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경험이 미천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소떼른 와인은 싼 것이 확실히 비지떡이었습니다. 도저히 마실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드는 녀석들도 많았거든요. 소떼른 와인 중에 마음에 들었던 것은 모두 1등급 이상이었습니다. 분명히 아직 경험이 적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더 경험해보고 싶은 지역이기도 합니다만, 이런저런 여건상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마셨던 와인들을 쭉 세워놓고도 한 번 찍어봤습니다. 화면에 다 담기지 못할 만큼 많이 마셨더군요. 이제 슬슬 2차로 자리를 옮깁니다. (응? 더 마신다고??)
신사동에서 모임을 가지면 언제나 들르는 메이저 리그입니다. 앞에 보이는 양은 그릇에는 게장과 비벼놓은 밥이 들어 있죠. 정말 맛있습니다. 그 앞에 보이는 와인 병은 오랜만에 마시는 이태리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입니다. 와인 메이커는 까스텔 지오콘도라는 잘 모르는 곳이었어요. 뒤늦게 오신 분께서 한 병 가지고 오셨더군요. 잔이 없어서 소주 잔에 마셨는데,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녀석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엄청난 와인을 마신 모임이 지나갔네요. 사실 8~10 명 정도 모여서 BYOB(Bring Your Own Bottle)를 하면 10 여종의 와인을 한 번에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가 자주 있기도 했고요. 헌데 그럴 때마다 카메라를 놓고 갔네요. 결국 블로그에 남아있는 사진은 최근에 올린 몇 개가 전부예요. 참 아쉽습니다.
그리고 더 아쉬운 건. 이렇게 정리를 하려고 할 때, 와인의 느낌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다는 거죠. 물론 와인을 편하게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건 제 지론이기도 하고요. '알려고 하지말아라. 마시다보면 알게 된다.' 하지만 블로그에 이렇게 정리해서 올릴때 '이게 좋았어요', '저건 별로였어요'라고 하는 건 왠지 '자랑'같이만 들립니다. 제대로 정보를 드리고 싶지만 뭐 기억나는 게 있어야 말이죠. 그렇다고 시음 노트까지 쓰는 건 정말 저와는 안어울리는 일이고 말이죠.
그래서 드는 생각은 최대한 빨리 정리해놓자는 겁니다. 이렇게 한 달 지난 다음에 올리면 당연히 기억 안나겠죠. 매주 주말에는 그 주에 마셨던 것들, 다녀왔던 곳들에 대한 사진을 정리하고 코멘트를 달아놓으면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모아둘 수 있겠죠. 그러면 이렇게 추상적인 글이 되지는 않을 거고요.
그리고 최근에 마신 와인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리할 모임이 딱 두 개 남았네요. 물론 둘 다 마신 와인의 양이 적지 않아 큰일이긴 합니다만... 당분간 와인을 마시지 않을 거니까, 최대한 빨리 정리해둬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