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대학에 입학한지 14년이 지났군요. 그 동안 매년은 아니지만 5월 대동제와 9월 4일(일명 구사절)에는 동기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 5월 23일에도 몇 년만에 학교축제때 열리는 과주점에서 동기모임을 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08 학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책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름 즐거운 자리였고 그 자리에서 급결성된 여행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은 '언제 한 번 가자'라고 말만 나오고 흐지부지 됐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성사가 됐고, 지난 6월 6일. 드디어 (도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대학 동기들의 여행이 시작된 겁니다.
아침 11시. 올림픽 공원에서 모였습니다. 당연히 저는 30분 지각을 했고요. 덕분에 15분 지각한 녀석은 눈치를 안봐도 됐죠. 제가 그런 면에서보면 참으로 남을 배려하는 성격입니다.
어쨌든 두 대의 차에 나눠탄 우리 일행은 총 다섯 명. 목적지인 마곡사로 향합니다. 마곡사는 공주 근처의 태화산에 자리잡고 있는데, 충남 일대의 80여개 사찰을 관리하는 조계종의 본사입니다(조계종 본사는 총 25개).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라마교식 석탑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흠흠. 정말 오랜만에 전공 공부 좀 했네요(믿으실 지 모르겠지만 제 전공은 건축).
마곡사 밑의 주차장에 두 대의 차가 도착했습니다. 익산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 녀석도 합류한다고 해서 주차장에서 기다리면서 한 컷. 잠시 뒤에 두 명의 동기가 합류해서 총 인원은 일곱 명이 됐습니다.
다 같이 모여 점심과 함께 동동주도 한 사발 마시고는 마곡사로 향합니다. 산책로가 참 예쁘게 꾸며져 있더군요.
길가에는 갖가지 군것질 거리와 산나물을 파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군밤 굽고 계시는 아저씨의 모습.
이제 본격적인 산책로의 시작입니다. 한문으로 태화산마곡사라고 쓰인 문이 보이네요.
도무지 공통점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든 녀석들. 하지만 이런 게 동기의 끈끈함 같은 거겠죠. 벌써 너무 웃어서 얼굴이 땡기고 있습니다.
한적한 산책길. 사진으로만 담고 미처 걸어보지는 못한 쪽입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청양으로 가야했거든요.
드디어 해탈문입니다. 오랜만에 '배흘림'이라는 단어도 들을 수 있었어요. 공부했던 걸 아직 안 까먹은 녀석들도 있었단 말이죠.
해탈문과 일주문을 지나 드디어 마곡사의 안마당으로 들어섭니다. 물 속엔 잉어가 아주 많았어요.
안마당엔 바로 마곡사 5층석탑이 보입니다. 평소에 보던 석탑들 보다 기단이 높고, 전체적으로 좀 불안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비슷한 머리장식이 보입니다.
머리 장식을 좀더 자세히 보시죠. 확실히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은 아닙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이런 머리 장식을 가진 탑은 마곡사 5층석탑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또한 대광보전의 왼쪽 벽면에는 위와 같은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한국 건축사 수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되는 건물이면 분명 사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대광보전 뒤의 계단을 따라 대웅보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재밌는 표지판이 있어서 한 컷. '출입금지'같은 딱딱한 말보다는 훨씬 좋네요.
우리나라 고건축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2층 구조의 건물입니다. 바로 마곡사의 대웅보전. 실제로 2층으로 나눠진 건물은 아니고 실내의 공간을 위로 더 높게 만들기 위해 외형의 구조만 2층으로 올린 모습입니다. 처마 끝의 휘어짐도 아름답고, 화려한 다포식 공포도 웅장합니다.
대웅보전 앞에서 마곡사를 내려본 모습. 실제론 이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흑백만 있으면 섭섭하니 컬러로 다시.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계속 비가 오길래 사실 걱정을 했었는데, 감쪽같이 날씨가 쾌청해지더군요.
대웅보전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니 커다란 물이 흐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발을 담그고 지내기 좋도록 물다리(뭐라고 불러야 됩니까?)가 놓여 있었습니다. 신발이 젖을까봐 건너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젠 출발해야된다는 독촉도 있었고요.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세 대의 승용차에 일곱 명이 나눠타고는 청양으로 출발.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청양이었습니다. 동기 중 한 명의 부모님이 낙향하셔서 청양에서 밭을 가꾸고 계셨거든요. 청양. 맞습니다. '청양 고추'할 때의 그 청양입니다.
드디어 청양에 도착. 와우. 멋들어진 한옥을 지으셨습니다. 집 앞의 작은 밭은 온통 고추. 담장 쪽에는 유실수를 심으셨습니다. 밭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 집 앞으로 몇 천평에 달하는 밭을 가꾸신다고 하네요. 정말 고추 원없이 먹었습니다. 맵지도 않고 톡 쏘는 맛이 아주 감칠 맛 나는 게 너무 맛있더군요.
곧 해가 저물면 고기와 술이 차려질 원두막입니다. 멋집니다. 멋져.
멋스런 한옥을 좀 더 가까이. 한 녀석이 맥주를 들고 오는 군요.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한우 등심이 구워집니다. 보기에는 환상적이었는데 실제론 조금 질겼습니다. 덕분에 씹는 맛이 충분하긴 했지만요. 왼쪽에 '린'이 보입니다. 충남에서 파는 소주. 아주 부드럽습니다.
등심을 모두 먹어치운 다음에는 삼겹살로 종목이 바뀝니다. 고기 참 좋더군요. 그리고 얼굴은 안나왔지만 동기 녀석의 부모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술이 돌고, 음식이 돌고, 밤이 깊어가고,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고...
그 와중에 서울에서 근무를 마치고 고속버스로 합류한 동기 녀석이 나타납니다. 취기를 서로 맞추기 위해 서너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금세 분위기에 적응하더군요. 자, 이젠 일행의 숫자가 합이 여덟이 됐습니다.
이렇게 밤이 깊어 갑니다. 한옥은 밤에도 멋지네요.
하지만 우리의 얘기 꽃은 그칠 줄을 모르는 군요. 너무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인가 봅니다.
[#M_(와인에 관심 없으시면 안눌러도 되요...)|(닫기...)| 아, 와인을 일곱 종류, 여덟 병 가져갔는데 완전 정신없이 다 마셔버려서 맛은 통 기억이 안납니다. 모두 수서 이마트에서 만원 미만으로 산 와인들입니다.
이번엔 따로 리스트 정리는 안하려고요. 가토 네그로는 생각보다 별로였고(전혀 소비뇽 블랑스럽지 않았습니다), 도미니오 에스피날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체보(Macebo)라는 품종을 쓴다는데, 샤르도네보다는 산미가 부드럽고 소비뇽 블랑보다는 청량감이 좀 떨어졌습니다. 어쨌든 이 정도의 와인을 만원 미만으로 살 수 있다면 굳.
남아공의 오비크와는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가격을 생각한다면(지난 주에 할인까지 합해서 3천원이었습니다. 제가 구입했던 가격은 6천 9백원) 괜찮습니다. 진정한 데일리라고나 할까요. 폴링스타는 역시 트라피체구나 싶더군요. 저렴한 와인도 마시기 좋게 만드는 메이커입니다. E&J 갈로는 몇 년 전 미국 판매량 1위의 브랜드죠.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이 편한 와인을 만드는 곳이죠.
오랜만에 이태리 와인을 하나 샀는데, 원래 싼 가격에서는 이태리 와인이 힘을 보여주잖아요. 헌데 맛이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아쉽. 트리벤토도 역시 기억이 안나네요.
전체적으로 마트에서 만원이면 마실만한 와인들을 살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수서 이마트는 그다지 와인 물량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엄선된 것들일지도 모르겠고요.
여튼!!! 첫 날은 그렇게 저물어 갑니다. 이 때까지는 아무도 이번 여행이 어찌 흘러갈 지 모르고 있었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