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참석한 시음회. 이번 시음회는 프랑스의 숨어있는 작은 도멘들을 전문적으로 발굴해 수출하는 '수출상'이 주최한 시음회다. 국내 수입상이 아니라 수출상이 직접 현지에 지사를 차리고 시음회까지 여는 일은 좀 독특한 듯. 참석자를 모으는 글을 읽었을 때 와인 리스트를 보고 지역도 품종도 독특한 것들이 많길래 1등으로 신청하고 입금했다. 장소는 논현동의 토마토 이야기. 수출상에서 직접 지사장(이라고 해도 아마 현지 직원 그러니까 한국인 한 명과 지사장 한 명이겠지?)으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설명해줬다.
당연하게도 음식들도 좋았지만 음식 사진 까지 찍기에는 설명 들으랴 와인 마시랴 집중할 시간이 부족했고, 카메라를 가져간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폰으로 겨우 레이블만 찍어서 남겨둔 정도.
먼저 전체 시음평을 정리해본다면 특이해서 재밌었다. 그 동안 마셔보지 못했던 독특한 품종들에 대한 경험도 좋았고, 8 가지의 와인 모두가 비슷한 뉘앙스가 아닌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재밌었다.
그럼 간단하게(?) 그날 정리해둔 시음기를 포스팅해본다. 마시면서 바로바로 아이폰의 어섬 노트에 사진도 붙여넣고, 시음기도 주절주절 적어 놓았다. 포스팅 순서는 서빙 순서와 동일.
병입 이후에 2차 발효를 시키는 상빠뉴의 제조 방식과 완전히 동일하게 만든다는 클레망. 단지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클레망이라고 불릴 뿐 샴페인과 견줄만한 퀄리티라는 설명. 상큼하고 시원한, 과일과 꽃이 느껴지는 향이 맨 먼저 느껴진다. 입에 넣으니 어딘지 모르게 혀를 감싸는 오일리한 느낌이 든다. 처음엔 향에 비해 맛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았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니 훨씬 좋아진다.
:: Muscadet , sur Lie 2009 - Domaine des Cognettes
Region : Loire
Appellation : AOC Muscadet Sevre et Maine
Varietal(s) : 100% Muscadet (Melon de Bourgogne)
Alcohol Content, Size: 13%, 75cl
AOC명이 특이하다 했더니 Sevre 강과 Maine 강이 만나는 지역이라고 한다. 처음 듣는 지역. 첫 느낌이 상쾌한 미네랄과 과일향이라 소비뇽 블랑이라 착각할 뻔 했다. 게다가 마지막에 살짝 느껴지는 석유 같은 향까지. 전형적인 무스까데 병모양이라고 하는데, 아주 멋들어진 라인이다. SUR LIE 제조 방식을 따라서 일반적인 무스까데랑 맛이 다르다고 한다. 효모를 걸러내지 않고 함께 발효하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포도를 수확하는 도멘이라는 얘기도.
정확하게 어떤 향들인지 구분해 내기는 힘들었다(미천한 경험과 엉망인 코의 문제 ㅠㅠ). 하지만 뭔가 구워진 것 같은 향이 피어 올랐고, 뭔가에 한꺼풀 감싸인듯한 느낌으로 풍부한 향들이 몽글몽글 모여있는 느낌이었다. 블렌딩한 모든 품종이 처음 들어본 품종들. 그래서 더욱 명쾌하게 느낌을 잡아내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매력이 있는 와인이라는 느낌.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셔봐야 어떤 와인인지 알 수 있을 듯.
이날 소개됐던 와인들중 몇몇은 위와 같은 엠블럼을 표시하고 있었다(사실 어떤 와인들이었는지, 모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두 병 이상이었다). 오크통을 메고있는 엠블럼인데 Vignerons independants de France라는 앰블럼이라고 한다. 소규모 독립 도멘이라는 프랑스 정부 인증 마크라고 생각하면 쉬울 듯.
:: Saint-Nicolas de Bourgueil 2009 - Vignoble de la Jarnoterie
Region : Loire
Appellation : AOC Saint-Nicolas de Bourgueil
Varietal(s) : 100% Cabernet Franc
Alcohol Content, Size : 12.5%, 75cl
까베르네 프랑은 그 이름을 많이 들어본 품종이지만 100%를 사용한 와인은 처음인 것 같다. 까베르네 쏘비뇽의 아빠(?)라고 불리는 품종이라는데, 잔에 따르니 색상은 훨씬 맑다. 피노 누아보다 살짝 짙은 정도. 빈티지가 어리기 때문인지 품종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상큼 발랄한 녀석이었다. 잘~ 만든 보졸레 누보를 마실 때처럼.
:: Bourgogne Pinot Noir 2008 - Domaine Poulleau
Region : Bourgogne
Appellation : AOC Bourgogne
Varietal(s) : 100% Pinot Noir
Alcohol Content, Size: 12.5%, 75cl
처음 코를 대니 부르고뉴 루즈에서 자주 맡을 수 있던 비린내(이거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가 살짝 올라온다. 시간이 좀 지나니 맑아졌다. 색상은 역시나 피노누아. 빈티지 때문인지 색상도 아주 상큼하다. 앞선 와인보다 훨씬 더 가벼운 느낌. 거의 쥬스같을 지경.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접근하기에 쉬워서 좋을지도. 오천에서 만병정도 소량 생산하는 도멘이라고 한다.
:: Petit Verdot 2009 - Domaine Bergon
Region : Languedoc
Appellation : VDP d’OC
Varietal(s) : 100% Petit Verdot
Alcohol Content, Size: 13%, 75cl
시음회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낫다고 말씀하셨던 와인. 그리고 유일하게 AOC 등급이 아니라 뱅드뻬이 등급이기도 했다. 오히려 AOC 보다 규제가 적기 때문에 개성이 강한 와인을 만들기가 더 좋다는 설명. 개인적으로 랑그독 쪽의 와인을 자주 마시지 않기도 한 데다가, 쁘띠 베르도가 100%인 와인도 처음. 그리스 와인을 처음 마셨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말 그대로 그냥 '처음이다'. 재밌는 향과 맛. 역시나 처음 만난 녀석은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 Visan [ Le Deves ] 2008 - Domaine La Guintrandy
Region : Rhone
Appellation : AOC Cotes du Rhone Villages Visan
Varietal(s) : 90% Grenache, 10% Syrah
Alcohol Content, Size : 14%, 75cl
이미 코는 마비된 상태. 그래도 입에 머금으니 후추향과 각종 향신료의 향이 잔뜩 올라온다. 론지역, 그라나슈, 쉬라. 그나마 익숙한 느낌. 빈티지는 아직 어리다. 한 잔 더 마시니 좀 심할 정도로 향신료의 느낌이 많이 치고 올라온다. 이때 서빙된 음식이 갈비찜이었는데, 갈비찜과 함께 입에 머금으니 그 마리아주가 아주 환상적이었다. 와인도 갈비찜도 전혀 다른 맛으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상승 작용. 꽤 오래된 와이너리지만 현재는 삼십대 초반의 젊은 오너가 의욕적으로 운영중이라고 한다. 레이블 위에 붙어 있는 스티커는 어떤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표시.
AOC도 처음 보는 곳. 품종도 가메를 제외하고는 처음보는 것들. 과일향이 은은하다. 하지만 뒷맛은 깔끔하다. '화이트 와인스럽다'는 노트가 남겨져 있는데, 어떤 면에서 화이트 와인스러웠다는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은은한 단맛 덕에 마시기가 편안하고 로맨틱하다. 연인과 기념일에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