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ers

중국 출장에서 있었던 일

zzoos 2018. 10. 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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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관두기 전, 마지막으로 담당하고 있던 일은 우리가 만든 게임을 해외에 서비스하는 일이었다. 그 첫 번째 국가는 중국이었고 이후 서비스를 준비하던 곳은 미국, 동남아, 일본 등등 이었는데, 재작년 즈음에는 중국 서비스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상해로 출장을 갔었다. 짧게는 3~4일 정도였지만 현지 테스트를 준비할 때에는 열흘씩 출장을 가 있기도 했다.


출장을 나가서 업무를 진행할 때에는 현지 업체의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우리가 사용할 PC를 세팅해 둔 큰 회의실을 준비해준다. 나는 기획자였지만 기획자, 프로그래머, 해외 서비스 PM 등 서로 다른 직군들이 같이 모여서 업무를 본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생긴 문제를 주워듣게 된다. 사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출장 기간 중에는 소수의 인원이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하다보니 거의 모든 업무 내용을 공유하기도 하는 데다가, 나름 출장 중 기획쪽의 총 책임자인데다가 개발쪽에서 진행한 업무를 정리해서 공유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날그날 발생한 문제와 그 해결 결과를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 상투적이다 ㅋㅋ)


현지 테스트가 임박한 날이었다. 게임 서비스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엄청나게 신경이 곤두 서 있고, 모든 이슈는 아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실 아무런 이슈가 생기지 않아야 할 정도로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하는 시점인데, 준비에 쓴 시간과 노력의 총량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상하리만치 꽤 큰 이슈가 터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날도 그랬다. 갑자기 프로그래머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과 말투로 짐작해보건데 꽤나 크고 중요한 이슈임에 분명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인지 물어보니.


곧 다가올 테스트를 위해서 IDC에 서버들을 새로 세팅해서 QA를 하고 있는데, 자꾸 서버의 시간이 8시간 전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중요한 테스트라서 장비도 새로 구매했기 때문에 낡은 장비나 오래된 세팅에서 오는 문제는 아닐 거라고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버그들이 계속 나오길래 왜 그런가 하고 살펴보니 서버의 시간이 문제였고, 몇 번을 살펴보니 8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문제가 있다는 거다.


대단히 큰 문제였다. 바로 다음 날 테스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테스트 오픈은 커녕 QA 조차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 모두가 멘붕에 빠져있었다. 왜 8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거지? 1시간도 아니고, 하루 전도 아니고 8시간은 도대체 뭐야? 프로그래머들은 다양한 가정으로 해결책들을 내놓고 있었지만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기획자들에게도 이슈를 전파하고 혹시나 모를 데이터상의 오류를 점검해보라고 했다. 해외 서비스에서 자주 벌어지는 인코딩 관련 문제도 빼놓지 말고 살펴야 했다. PM들은 테스트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번뜩! 하면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했다. "혹시 서버 모델이 뭐예요?" 그러고 나서 구글을 열었다. 간단한 키워드로 구글 검색. 그리고 프로그래머 팀장에게 검색 결과 중 한 페이지의 링크를 보냈다. 잠시 후 프로그래머 팀장이 나에게 달려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 10년 정도 같이 일하면서 그 녀석이 나를 그렇게 강하게 포옹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검색한 키워드는 해당 서버의 모델명과 UTC+0 RESET 이었다. 그랬더니 해당 모델의 알려진 이슈(known issue)로 특정 조건에서 서버 시간이 UTC+0 으로 리셋되는 문제가 있다는 페이지가 나왔고, 제조사에서 새로 제공한 BIOS로 업데이트하라는 공식 해결책도 나와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서버 시간이 맘대로 변해요'라던가 '서버 시간이 8시간 전으로 돌아가요'가 아니라 '서버 시간이 표준시로 돌아가요' 였던 것이다. 중국 표준시는 UTC+8 이니까 UTC+0으로 돌아가면 8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뿐인 거다.


결국 서버 문제는 해결됐고, 테스트는 제시간에 오픈할 수 있었다.


해답은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질문을 제대로 몰랐을 뿐이다. 정확한 질문이 아니면 제대로 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새삼스럽게 하지만 진하게 느꼈던 날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정확한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다.


엄청 장황스럽게 옛날 얘기를 썼는데, 요즘의 나에게 다시 해주고 싶은 말이다. 답을 찾아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있지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시간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니 조급해하지말고 '답'이 아닌 '문제'와 '질문'에 좀더 시간을 써보자.


아마도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찾아낸 답과 그 이후라기 보다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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