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 건지, 긴 여행(?)의 외로움을 친구들이 위로해줘서 그런 건지, 전날 과음을 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랜만에 정신이 멍~ 한 상태.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해장을 해보려 했으나 실패. 하지만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누워서 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바다가 보고 싶다고 난리. 어제 월정리쪽으로 가봤으니 오늘은 애월이나 표선이나 그런쪽으로 돌아볼까? 했더니 됐단다. 표선쪽은 너무 멀고, 애월쪽은 많이 가봤다고 오늘도 동북쪽 그러니까 월정리 방면으로 드라이브하기로 결정.
체크아웃하고 나와서 3명을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초보 운전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오늘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시간을 좀 아끼려고 월정리까지는 해안도로를 타지 않고, 월정리 근처에서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굳이 월정리를 또 갈 필요는 없었으니 해안도로를 타고 평대를 지나 세화쪽으로 더 들어갔다.
말 그대로 월정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차량이 확 줄어들고 다시 한적해진다. 하지만 해안도로를 따라 에메랄드빛 바다는 계속되고, 간간히 예쁜 카페들이 보인다.
그러다가 발견한 특이한 카페. 제주의 낡은 가옥 전면부에 유리로 만든 큐브를 연결했다. 카페의 이름은 밸란디(구글맵 링크). 제주 방언으로 '별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게가 너무 예뻐서 음료를 마시면서 검색을 해보니 홈페이지(링크)가 한 나온다., 카페만 운영하시는 것이 아니라 독채 펜션(?)을 함께 운영하시는 듯. 홈페이지 사진을 봐도,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슬쩍 들여다 봐도 참 예뻐서 언젠가 한 번 묵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점심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라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재연식당(구글맵 링크)이라는 곳이 평이 괜찮고, 친구들이 메뉴를 마음에 들어한다. 옥돔 구이와 갈치 구이 그리고 제육 복음. 이런저런 밑반찬과 함께 그럴듯한 한상이 차려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평이 좋을 집인가?' 싶을 정도로 그냥 평범한 집이었다. 생선의 상태도 아주 뛰어나진 않았다. 오히려 밑반찬들이 괜찮았다. 하지만 월정리 방면에는 말 그대로 '평범한' 정도의 식당도 잘 없고, 이런 식으로 '집밥' 느낌이 나는 한상이 나오는 식당이 잘 없다는 점에서 높은 평점이 살짝 이해가 되긴 했다.
오전엔 그렇게 맑지 않더니 친구들이 올라갈 시간이 되니 하늘이 쾌청해지기 시작한다. 하얗게 피어오른 뭉게구름.
3명의 친구들 중에서 두 명을 공항에 내려주고 남은 친구와 함께 표선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도 숙취를 완전히 해독하지는 못한 상황이라 말 그대로 바닥에서 뒹굴었다. 정말 뒹/굴/뒹/굴. 그렇게 얼마를 뒹굴었을까? 슬슬 배가 고픈 시간. 그리고 전날의 알콜은 모두 빠져나가고 몸이 새로운 알콜을 원하는 시간.
해물과 성게들을 포장해다가 숙소에서 간단하게 한잔 하자는 생각으로 차를 가지고 서상동 해녀의 집을 방문했다.
※ 서상동 해녀의 집 (구글맵 링크)
나중에 별도의 포스팅을 올릴 것 같은 집이긴 한데,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정식 가게는 아니고 해녀회에서 여름 성수기에만 잠깐 오픈하는 집이다. 위에 링크를 걸어둔 주소로 찾아가보면 해녀 탈의실이 하나 있다. 지도를 보고 위치를 잘 모르겠다면 해비치 리조트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약 3-5분 정도 서귀포 방면으로 내려오면 왼편에 있다.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오픈해서 언제까지 영업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름 성수기 약 3개월 정도라고 한다. 전화로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한데, 안타깝게도 전화번호를 모르겠;;;
멀지 않은 곳에 해녀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이 하나 더 있어서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 그곳은 해녀가 하는 집도 아니고 1년 내내 상시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해녀의 집에 도착했더니 친구 녀석이 "아니 여기 이렇게 경치가 좋고 분위기가 좋은데 굳이 집에 가서 마셔야 대?"하고 물어본다. "아니 그럼 차를 두고 왔어야지. 차는 어떡해. 지금 두고 올까?" "그냥 여기 놔두고 내일 가져가면 안되나?"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
그랬다. 차를 가져왔다고해서 꼭 차를 가져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교통량이 많은 곳도 아니고 주차 공간도 꽤나 넓은 데다가 숙소도 걸어서 갈 수 있을만큼 가까운 곳인데, 그냥 차를 놔두고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간의 여행이 대단히 '차'에 얽매여 있었는데 뒷통수를 한 대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갖힌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결국 차를 내일 아침에 가져가는 것으로 사장님(?)께 허락을 받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표선의 거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라산을 꺾어 넣고 눈을 뜨면 푸른 표선의 바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은 성게 비빔밥. 풍성하게 들어 있는 성게알. 과하지 않은 김가루. 상큼한 오이의 조합이 대단하다.
잘 비벼서 푹푹 떠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어느새 바닥. 친구와 눈을 슬쩍 마주친 다음 결국 한 그릇을 더 주문해야 했다.
사진엔 많이 보이지 않지만 성게가 매우 풍성하게 들어 있어서 향이 좋은 성게 미역국을 곁들이면 다시 한 번 한라산을 부른다.
거기에 신선하고 질 좋은 홍삼과 소라, 전복. 그리고 문어와 자연산 미역. 화룡점정인 성게알. 그러고보니 모든 메뉴에 성게가 들었구나. 성게 잔치. 소라회를 좋아하는 나는 소라를 집중 공략하고 친구는 전복을 공략. 홍삼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니 이날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어느덧 배도 부르고 술도 살짝 올라오길래 뒤를 돌아보니 아~! 아름다운 풍경. 그동안 제주를 여행하면서 그리고 이후 제주를 여행했던 모든 순간을 통틀어서 최고의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그렇게 기분좋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남은 술들을 꺼냈다. 친구들에게 선물받은 조니워커 블루가 새로운 식구로 등장. 어제 마시다 남은 핫카이산 나마겐슈 레드라벨.
물론 안주는 서상동 해녀의 집에서 남은 해물 + 성게알 추가해서 포장한 것. 마셔도 마셔도 술이 안 취하더라나 뭐라나...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하루였습니다만, 이 포스팅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은 서상동 해녀의 집은 정말 강추라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근처에 해녀의 집이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이 있으니 헷갈리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름 성수기에만 잠깐(약 3개월) 오픈하는 곳이라 영업 중인지 확인이 필요한 집입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지인들을 데리고 가도 모두 대만족했던 곳입니다. 아마 분위기가 크게 한 몫했겠죠.
그러고보면 우연히 잡은 숙소 근처에 이런 식당이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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