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ces/2017 초보의 자동차 전국 일주

초보의 자동차 전국 일주 : 31일차 - 제주, 덕구상회, 월정리, 우드스탁

zzoos 2018. 12. 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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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계획했던 제주의 일정은 사실 오늘 끝나는 것이었다. 목포로 나가는 배를 미리 예약해놨고, 숙소도 오늘까지였으니까. 제주에서 2주를 지내면서 '참 좋다'라는 느낌을 자주 가졌고 좀더 여유롭게 제주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를 표선으로 잡았더니 막상 제주시에 있는 식당을 별로 못 가본 것도 아쉬웠고, 월정리에서도 술을 좀 마시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숙소를 정할 때는 제주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아무데나 숙소를 잡아도 택시를 타고 술을 마시러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제주를 떠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라고 하더라.


그래서 어젯밤, 목포로 나가는 배표를 17일로 교환했다. 어차피 백수에게 여행 일정은 무의미한 것.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났다면 일정 정도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젯밤 큰 실수를 하나 더 깨달았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던 표선의 숙소... 예약이 잘못되었다! 예약 기간을 6/28 ~ 7/11으로 설정하면서 7/11까지 숙박을 하고 7/12에 체크아웃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7/11이 체크아웃이었던 것이다. 오늘이 12일이니까 예약보다 하루를 더 묵은 셈.


아침에 일찍 일어나 풀어두었던 짐들을 싹 정리해서 차에 싣고, 욕실과 부엌 그리고 방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쥔장님 작업실로 가서 마지막 커피를 마시면서 숙소 예약 얘기를 꺼냈다. 내가 실수했으니 하루치 비용을 더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러면 내 마음도 불편하니까 꼭! 받으시라고 우겨서 결국 비용을 더 드렸다.




떠나기 전 2주 동안 정들었던 숙소를 기억하기 위해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박공 지붕의 건물이 내가 묵었던 별채. 그 앞에 서있는 아반테가 이번 여행 내내 나와 함께해준 차. '초보운전'은 서울에 돌아올 때까지 떼지 않았다.



쥔장님의 작업실. 너무나 아쉬웠던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출발! 뭐랄까 제주 여행 part 2 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매일 달리던 길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기분.



어딘가 멀리 드라이브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고, 문득 카레가 먹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저 멀리 대정읍 부근에 덕구상회()라는 곳을 발견.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했다. 사진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전혀 '식당'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 데다가 주변 분위기도 굉장히 횡~ 한 곳이고, 거의 도착했을 때 (초보운전자에게는) '길'이 좀 복잡해서 길을 잘못 들었었다. 물론 U턴으로 쉽게 돌아와 길을 찾을 순 있었지만.




다양한 소품과 독특한 개성이 가득 차고 넘치는 곳이었다.



먼저 주문한 것은 아보카도 쉐이크. 인기메뉴라고 하셔서 주문했는데, 아...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는 음료였다. 그냥 커피를 시킬 껄 ㅠㅜ



기억이 맞다면 메뉴판에는 3개 정도의 카레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메뉴를 선택. 아... 이것도 실수였다. 너무 맛있긴 했는데 저 위의 '치즈'가 문제. 안그래도 입이 짧은 나에게 양이 엄청 많은 카레와 밥 위에 치즈까지 듬뿍 올라가 있으니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카레'가 먹고 싶었는데 치즈가 카레를 살짝 가리는 것도 아쉬웠다.


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꽤나 맛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다가 사장님과 얘기를 좀 하게 됐다. 한 달 이상의 일정으로 전국 일주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부럽다는 반응. 입이 짧아서 꽤 많이 남겼는데 절대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 오늘의 숙소는 어느 쪽이냐길래 월정리라고 대답했고, 서울에서부터 단골이었던 가게의 형님이 그곳에서 우드스탁이라는 가게를 하신다는 TMI도 추가. 아, 고래가 될 카페 자리에 생긴 게 그건가? 라는 반응. 배 부르게 밥을 먹고 나니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좋겠냐는 질문. 그리고 추천 받은 숨비나리()의 2층.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좋을 것이라는 추가 정보.


그래서 달려와보니 정말 경치가 좋았다. 멀리 보이는 (아마도) 가파도. 솔직히 커피 자체는 매우 평범해서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목적지를 월정리로 잡았는데, 네비가 자꾸 제주시를 뚫고 지나가는 경로를 추천한다. 어차피 나는 시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전혀 '시내'를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산간 도로를 통해 돌아서 가고 싶었는데, 네비게이션에 '경유지'를 입력하는 법을 도저히 모르겠어서 목적지를 짧게짧게 여러 번 입력하면서 제주시를 빙 돌아 조천쪽으로 향했고 이후 김녕을 통해 해안도로로 접어 들었다.


김녕에서 월정으로 가다가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컷. 역시 제주 북쪽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



월정에 도착해서 우드스탁 형님이 예약해준 숙소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TV를 보며 휴식. 저녁 시간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꽤나 체력이 필요한 밤이 될테니까.


저녁 시간이 돼서 형님과 함께 찾은 곳은 제주 흑돼지 전문점인 곱들락(). 매번 '월정에는 맛있는 식당이 없어!'라고 하셔서 별로 기대없이 방문했는데, 어라? 꽤 괜찮은 곳이었다.



딱 봐도 질이 좋아 보이는 고기. 가브리살이었나? 어쨌든 오겹살이나 목살은 아니었는데 주문했던 메뉴가 기억이 안 난다.



특이하게도 '고기'집인데 맥파이의 생맥주를 판매한다. 아! 여기가 제주인가? 하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



마무리로 주문한 찌개도 꽤 좋았다.



오랜만에 고기를 구워 먹고 나니 온몸에 기름이 쫙~ 끼었길래 숙소로 가서 샤워를 한 번하고 본격적인 밤(?)을 위해 우드스탁()을 방문.



이렇게 보니 건대에 있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도 들긴하지만, 여기는 건대 앞 낡은 건물의 지하가 아니다. 월정리의 맑은 해변이 내다 보이는 2층이다!



일단 시작은 '요즘 우리나라 맥주 참 잘 만들어~'라며 추천해주신 ARK()에서 만든 COSMIC DANCER.



그리고 이후에 이어질 라인업은 조니워커 블루 레이블, 맥캘란 12 더블 캐스크, 아드벡 코리브렉칸.



사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형님이랑 둘이서 회포를 음악 들으며 회포를 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손님들이 계속 들이 닥치는 거다. 처음에는 젊은 커플 손님이 계시다가 가셨고, 이후에 4명의 젊은 여성분들이 오셨다. 조니워커 블루 레이블을 한 잔 드렸더니 으~! 이 쓴 걸 왜 마시는 거냐고 한다. ㅠㅜ. 형님도 카페만 운영하다가 오랜만에 음악을 틀면서 술을 마시고 손님들이랑 얘기하는 게 재밌었는지 약간 들뜬 것 같았다.


그러다가 방문하시니 중년의 부부 손님.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으시게 돼서 대화가 시작됐다. 딸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오셨다고 하는데, 그 여행 방식이 매우 독특했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같이 제주도에 내려오긴 했지만 딸은 그 나름대로의 여행 스케줄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서 굳이 함께 돌아다니진 않으신다고. 심지어 숙소도 따로 잡았으니 말 그대로 따로 여행하는 셈.


예전에 승무원이셨다는 여전히 아름다우신 부인이 살짝 만류하셨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멋진 남편분은 내가 계속 권하는 몰트 위스키를 거부하지 않으셨다. '아니 도대체 뭐하시는 분입니까?' '예? 저는 그저 회사를 때려치우고 운전 연수를 위해 전국 여행을 하고 있는 백수일 뿐입니다.' '혼자 여행하시는 분이 이런 멋진 술을 들고 다니다니, 절대 평범한 분은 아니신데요' '혼자 여행하다보니 밤에 홀짝 거릴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 마셔야죠. 짐은 차가 싣고 다닐텐데요.' 이런 식으로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원하시는 술을 따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아드벡을 선택하신다. 몰트 위스키에 매우 익숙하신 분.



형님과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자꾸 손님들이 찾아와서 훼방아닌 훼방을 받게 돼서 '어떻게 아직 문 안 닫은 거 알고 찾아왔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비슷한 대답이다. 묵고 있는 숙소 쥔장에게 '이 시간에 어딜 가면 한잔 할 수 있느냐?' 고 물어봤고 그 대답은 '월정리에는 이 시간에 마실 곳이 없을텐데...' 하면서 '어! 저기 우드스탁에 불이 켜졌네요. 불 꺼지기 전에 빨리 가보세요.' 라고 알려줬다고.


형님한테 물어보니 밤에 이렇게 손님이 많았던 적이 최근에 없었다고...


어쨌든 손님들을 모두 보내고 둘이서 음악을 듣고,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3시가 훌쩍 넘어 4시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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