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1박이 남았다. 친구에게 차를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더 늘릴 수는 없는 상황. 오늘의 출발지는 부산. 7번 국도를 달려보고 싶었고, 최대한 서울에 가까이 가서 마지막 1박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리가 되더라도 부산에서 강릉까지 7번 국도를 따라 달려보기로 했다. 약 350km 의 여정. 고속도로를 달리지 않는다면 여섯 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거리. 천천히 달리면서 중간에 쉬다보면 엄청 오래 걸리겠구나, 하지만 한 번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 달 이상 운전을 하면서 다녔으니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고 싶기도 했다. 과연 장거리/장시간 운전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혹시라도 중간에 너무 피곤하면 숙소를 잡고 쉬면 될테니 말이다.
해운대에서 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울산에 도착했다. 울산의 도로는 정말 황당/당황할 정도로 넓었다. 게다가 그 넓은 도로에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어딘가 공단 앞을 지나던 길이었던 것 같다. 부산에서 울산과 경주를 지나 포항까지는 확실히 7번 국도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의 7번 국도는 바다를 보면서 달리는 길이었는데 부산 - 울산 - 경주 - 포항 구간은 가끔 바다가 보이긴 했지만 말 그대로 '산업도로'의 느낌이 강했다. 트럭이 많아서 초보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구간이랄까.
그에 비하면 포항부터 강릉까지 올라가는 길은 지도상으로 계속 바다 옆을 달리는 길이다. 하지만 바다가 계속 보이지는 않는다. 시간이 좀더 여유로웠다면 7번 국도에서 바다쪽 지방도로 빠져서 드라이브 하다가 다시 7번 국도로 합류하는 식으로 돌아다녔을 거다. 물론 그랬다면 절/대/로 일정 내에 서울로 올라오지 못했을 거지만.
경주에 도착했을 즈음 점심 시간이 되었다. 이런 저런 검색을 하는 것도 귀찮아서 네비게이션에 보이는 식당을 바로 찾아갔다. 다행히 1인분도 주문이 가능했다.
우연히 찾아갔지만 꽤나 오래되고 유명한 식당. 간단한 점심 한 상이라고 보면 나쁘지 않은 한 상이었는데, 과연 '유명할만한' 식당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뭐 그냥저냥.
하지만 경주라는 곳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 경주라는 곳의 특징이 뭐냐면... 특히나 '식당'에 대한 얘기이긴 한데... 정말이지 맛있는 집이 없다. 그나마 최근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점심 식사를 할만한 식당은 많아졌다. 나만해도 경주에서 꼭 찾는 태국 식당이 있을 정도. 하지만 '경주하면 전통의 도시, 전통의 도시를 찾았으니 경주 전통 음식으로 저녁을 먹어야지!'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말 그대로 갈 곳이 없다. '꼭 전통 음식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오늘 저녁은 뭐 먹지?'라고 해도 갈 곳이 없다. 정말 문제다. 큰 문제. 여기에 지역 주민의 코멘트를 하나 더 붙인다면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찾아간 집은 무조건 실패'라고 할 정도로 관광객 대상의 식당들은 별로다.
최근 경주 주민들에게 추천받은 식당들이 좀 있으니, 언젠가 경주 여행을 다시 하게 된다면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옆으로 샌 얘기를 다시 원래의 길로 데리고 돌아오면, 경주의 날씨가 무척 좋았다. 바로 옆이 황리단길이라 커피라도 한 잔하고 출발할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주차하고 걸어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아까웠다.
그래서 바로 출발!
7번 국도를 따라 울진 주변으로 접어들었을 때 '아, 달리길 잘 했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 경치가 좋아졌다. 더 이상은 산업도로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던 그 7번 국도였다. 머리 보이는 바다의 경치가 너무 좋아서 휴게소에 들러보기로 했다.
우연히 들른 망양 휴게소(↗)에서 만난 엄청난 경치. 제주의 바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것과도 또 다른 멋진 바다.
생각해보니 경상북도의 바다는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저 강릉이나 속초의 바다와 비슷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바다.
바쁘게 달리는 와중에도 이곳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국도의 휴게소 치고는 규모가 꽤나 큰 곳이었는데, 심지어 펜션까지 운영하는 곳. 깎아져 내리는 절벽을 따라 펜션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모든 숙소가 오션뷰일 수밖에 없겠다고 짐작했다. 게다가 동쪽 바다니까 날씨만 좋다면 방 안에서 일출도 볼 수 있을지도?
울진을 지나 점점 강릉에 가까워질수록 바다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나의 운전 시간도 역대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바다를 따라 달리는 것이 의미 없다고 판단했고, 전화를 한 통 걸어 본 다음, 목적지를 평창으로 변경했다.
부산에서 출발해 총 8시간의 운전으로 도착한 평창에는 자주 찾는, 형님네 펜션이 있다. 애비로드(↗)라는 곳인데 이제는 가족처럼 친해진 형님과 누님이 운영하시는 곳. 될 수 있으면 이번 여행의 마무리는 이곳이고 싶었는데, 목표를 달성했다.
둔내 하나로마트(↗)에서 고기를 좀 사고, 여행하면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다니던 반찬들을 모두 꺼냈다. 이젠 여행을 정리하는 마지막 밤이니까.
물론 들고 다니던 술도 모두 꺼냈다. 형님, 누님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약 40일의 여행을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아직까지도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일정이 좀 꼬이면서 동/남해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많았고, 과연 이 여행이 끝날 수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리고 사실 이 여행은 회사 생활을 그만 두고 출발한, 내 '다음 인생'의 시작이었다. 형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얘기도 여행의 마무리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여행의 시작에 대한 얘기였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그저 머리를 비우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자 형님은 말 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다음 날,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한 몸에 쌓여있던 피로를 깨끗한 공기로 싹~ 씻어내고 형님 내외분과 함께 둔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함께 먹었다.
태기산 막국수(↗)는 둔내 시내에 있는 막국수 집인데 감자전이 매우 훌륭할 뿐만 아니라 김가루를 잔뜩 넣어 고소한 물막국수가 일품인 집이다. 춘천 쪽의 막국수보다는 면도 육수도 그리고 양념도 훨씬 깔끔한 느낌. 날이 더울 때 애비로드를 찾으면 꼭 들르는 집.
여행의 마지막 1박을 가장 좋아하는 형님의 펜션에서 그리고 마지막 식사를 좋아하는 식당에서 마치고 나니 '아, 이제 정말 이 길었던 여행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둔내에서 서울까지 돌아로는 길은 약 두 시간 정도. 제 2 영동 고속도로가 생기는 덕분에 30분 정도가 단축됐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아, 이제 서울에 돌아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초보에게 가장 어려운 건 서울의 운전이었다. 아무도 차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깜빡이를 켜고 어떻게든 오른쪽으로 붙어야했는데, 아무도 비켜주지 않는다.
에혀,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한 달 이상 매일 운전하며 생긴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바로 사라졌다. 내가 하던 운전은 운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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