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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군 50주년 기념 호국 가요제

zzoos 2019.01.28 01:35

에... 그러니까 일천구백구십팔년의 일이었을 거다. 소위 말하는 '군번이 잘 풀린' 케이스라서 군생활이 참 널널했다. 갓 병장을 달았을 때 즈음이던가? 관사병으로 지내던 '형'이 부사수를 받으면서 부대 내로 복귀했다. (관사병은 관사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제대할 즈음이 되면 부대로 복귀한다.)


볕이 좋았던 어느 일요일 오전. 바로 그 '형'이 본부중대에 볼 일이 있었는지 찾아왔다가 옆 마당 벤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어! 00야. 너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니? 기타도 좀 칠 줄 아네?"


"뭐 이렇게 소일거리하는 거죠. 운동하는 건 지지리도 싫으니까요."


"야, 내가 대학다닐 때 아카펠라 동아리했었거든. 사람들 모아서 노래나 부르면서 놀자. 어차피 남은 군생활 지루한데"


"와,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악보는 내가 구해올 게. 멤버 좀 모아봐"


정확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뭐 이런 식이었다. 사실 내가 일 안 하고 노는 만큼 후임들은 업무가 바쁜 편이었지만 그래도 야근까지 해야하는 상황은 아니었고, 연대장 당번병이었던 고등학교 후배도 부사수를 받아 널널해지는 즈음이었다. 일단 그들을 꼬셨다.


그렇게 서너 명의 멤버를 모으고, 파트 분배를 위해 두세 명이 더 필요해질 무렵...


공문이 하나 내려왔다. 아무리 말년 병장이라고 해도(심지어 나는 널널할 뿐, 아직 말년은 아니었다) 업무 시간 중에는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어야 했고,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공문은 내가 정리해 교육 장교에게 설명해주면서 결재를 받아야했기 때문에 모든 공문을 읽는 것은 생활화 되어 있었다.


"건군 50주년 기념 호국 가요제"


정확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공문의 제목은 이런 식이었다. 1948년에 창립한 대한민국 국군이 1998년을 맞이하여 50주년이 된 것이었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기념해 이런저런 행사가 많았는데 그중에 KBS와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건군 50주년 기념 호국가요제'라는 것이 있다는 거다.


취지와 모집요강 등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 나는 교육장교(대위)와 교육과장(소령)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전화를 들어(부대 내에서는 다른 부대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가 있다) 아카펠라 연습을 하던 형에게 먼저 알렸다.


"형님.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교육장교와 교육과장의 결재는 살짝 미루기로 했다. 치사하지만 연대 내 다른 멤버들의 참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래,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말 그대로 좀 치사했다...


공문에 따르면 사단마다 한 팀 정도를 뽑아서 예선에 내보낼 수 있었다. (육군 제2훈련소는 '사단' 규모의 부대다. 그러니까 훈련소에서 한 개 팀 정도를 선발해서 내보내야 했던 대회였다.)


정리해보자면....


연대의 경쟁은 결재 시간을 미루면서 이겨냈다하더라도 훈련소(사단) 내에서도 경쟁을 해야 했다. 분명히 모든 연대에서 1~2개 팀을 내보낼 터였다.


음... 에... 뭐... 얘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결론만 말하자면,


뽑혔다. S대 출신의 관사병이 급하게 휴가를 내고 학교로 돌아가 악보들을 구해왔고, 우리는 급하게 연습을 시작했다. 아, 이제서야 말하자면 총 멤버는 5명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아카펠라 팀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베이스 보컬은 바로 그 관사병이었다(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보컬 컬러를 가진 베이스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메인 보컬이었다... -0-


우리가 연습한 노래는 비틀즈의 Ob-La-Di, Ob-La-Da. 선정 이유는 단순했다. 그 형이 가져온 많은 악보 중에 멤버 모두가 멜로디를 알고 있는 노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경연'에는 역시 신나는 노래가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노래였다.


육군 제2훈련소장(☆☆) 앞에서 아카펠라 공연을 한 뒤 우리는 훈련소 대표가 되었다. 멤버 중에는 단 한 명도 조교가 없었지만(최소한 나는 조교로 뽑혔던 사람이긴 했는데;;) 우리는 어느새 '조교'가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육군 제2훈련소에서 군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조교'만을 떠올릴 것이었으니까.


...


여기까지 써두고 쭉~ 위로 올라가서 다시 글을 읽어보니 참 길기도 긴 얘긴데, 그래서 뭘 어쨌다는 건가 싶다. 그래서 조금 속도를 높여 봐야겠다.


...


훈련소 대표로 뽑힌 다음은 바로 '전군' 예선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육군' 예선이 아니라 '전군' 예선이라는 거다. 다시 얘기하면, 당시엔 나마저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육군 차원의 대회가 아니었다는 거다. 말 그대로 육/해/공군 그리고 해병대를 통틀어 벌어지는 '전군' 차원의 행사였던 거다.


예선을 치르러 여의도에 있는 KBS로 나왔다. 그래. 바로 그 KBS말이다. 한국방송공사. KBS!! 그러니까 이거 시시한 일이 아니었단 말이다. 이렇게 큰 일인 줄 알았으면 덤비지도 않았을 것을;;;;


예선 당일. '그냥 재밌게 하자!'는 의도로 웃고 떠들던 우리 앞에.. 허걱!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다. 정말 너무나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상대. 게다가 예선 공연 순서도 우리보다 앞이었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해군 군악대 합창단. 지휘자가 바로 우리 관사병과 함께 S대에서 아카펠라 그룹을 했던 사람이었고, 더욱 더 문제는 그들이 부른 노래가 우리와 같은 비틀즈의 Ob-La-Di, Ob-La-Da였다!!!


너무 잘하더라. 말 그대로 너무 잘하더라. 그 팀 뿐만이 아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군인들의 장기자랑 무대'가 아니었다. 정말 실력있는 팀들이 나와서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원조'의 무대라니...


하지만, 우리가 붙었다. -0-


어쩌면 실력으로는 가장 바닥이었을지도 모르는 우리팀이 결국  최종 결선에 오르게 된 거다.


아마도 우리팀이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슬아슬하게 방송에 내보낼만한 수준의 실력) + 군인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가사'였을 거다.


우리팀은 비틀즈의 노래를 그대로 부르지 않았다. Ob-La-Di, Ob-La-Da의 가사를 적절히 개사해서 이등병-일병-상병-병장으로 이어지는 군대의 삶을 적절하게(하지만 절대 솔직하지 않게 - 그러니 방송 가능하게) 공감가능한 정도로 불렀었다.


그게 우리팀의 본선 진출 요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쟁팀은 비틀즈의 노래를 가사 그대로 불렀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최종 결선. TV를 통해 녹화 방송했던 바로 그 최종 결선.


최종 결선은 KBS를 통해 녹화방송이 됐다. 건군 50주년 특집 호국 가요제. 이제와서 알고 보니 이건 열린음악회의 특집 방송이었다.


헐, 다시 말해서... 나 거기에 출연했었어요. KBS 열린음악회에 나왔던 사람이라고요! ㅋㅋㅋ


뭐, 본방에는 나왔지만 재방에는 편집됐더라. 역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였던 듯.


기승전... 급한 마무리지만, 사실 뭐 이 글을 쓴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술 먹고 쓰는 글이 다 그렇지 뭐...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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