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스페인이었다. 바르셀로나냐 마드리드냐 아니면 아예 작은 소도시냐 고민과 검색을 하고 있었다. 두 달에서 두 달 반 정도를 예상했다. 세 달은 무비자로 체류하기에 좀 아슬아슬해 보였으니까. 집을 하나 빌려 여행이 아니라 짧게 살아보는 기분을 느끼면서 가끔 차를 렌트해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는 걸로.
아, 이 소심한 마음은 걱정이 하나 생겼다. '국내 운전과 해외 운전은 다르겠지? 게다가 해외에서 렌트를 해본 적도 없잖아?' 정말 이유는 그거였다. 해외라고 하더라도 일본은 매우 익숙하니까 렌트도 연습해봐야지! (사실 이 시점에서 이미 에러다. 일본은 운전대가 반대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저기 들은 바에 의하면 좌우 반대인 운전이 그리 헷갈리진 않는다고 하길래...)
생각의 물꼬가 한 방향으로 트이기 시작하자 졸졸 흐르던 생각이 훨씬 거대한 물줄기로 변했다. 홋카이도, 혼슈, 큐슈, 오키나와는 가봤는데 아직 시코쿠는 가보지 못했으니 시코쿠를 한 바퀴 돌면서 시골길을 드라이브해야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흠... 시코쿠만 돌고 나오기엔 나에게 시간이 너무 많은데... 그럼 단발적으로 돌아다녔던 큐슈를 아예 작정하고 돌아볼까? 그러고 보면 사세보, 가고시마, 미야자키 같은 곳은 못 가봤는데! 그래서 큐슈 + 시코쿠 일주로 계획 변경. 러프하게 잡아본 일정으로 약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았다. 렌터카를 알아보니 한 달 내내 빌리기엔 가격 부담이 좀 쎄다. 주로 기차를 이용하고 중간중간에 필요할 때만 렌트하는 걸로 계획 변경.
비행기를 예약하기 며칠 전, 아니 해외에서 렌트해 운전하는 걸 연습하자면서 운전 날짜가 좀 적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겸사겸사 가보고 싶었던 미야코지마를 들렀다가 여행을 시작하자! 성수기가 아니니 사람도 별로 없을 거고, 한적한 남국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 끝내주겠지!
그렇게 계획은 미야코지마(오키나와) - 큐슈 일주 - 시코쿠 일주 로 변경. 미야코지마로 들어가는 비행기와 다시 나하로 나오는 비행기 그리고 후쿠오카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모두 예약하고 미야코지마에서의 숙소들을 예약하면서 여행이 시작됐다. 이때까지는 그런 여행이 될 줄 알았다. 이때 까지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여행이란 특히 장기 여행이란 살아있는 생물 같은 건가 보다. 시코쿠는 아직까지 발도 붙여보지 못했고, 계획에도 없던 히로시마(미야지마)와 오사카 그리고 와카야마가 추가됐고, 생각도 못했던 도쿄에서 약 이 주 동안 머물렀다.
뭐가 어떻게 흘러간 얘긴지, 내 마음은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미야코지마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큐슈의 구석구석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미야지마는 왜 들렀으며 와카야마는 누구와 함께 갔는지, 도쿄에선 뭐 한다고 이 주일이나 머물렀는지 이런 얘기를 이제 시작해볼까 한다. 역시 게을러터진 성격 탓에 그리 진도가 빠르진 않을 거다. 오죽하면 재작년 가을의 얘기를 이제서야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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