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옥상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이렇게 잘 순 없는데... 고민을 하다가 혹시나 싶어서 검색을 해봤다. '이갈이 방지' 뭐 이런 검색어였던 것 같은데, 잘 때 입에 물고 자는 마우스 피스 같은 게 있단다. 심지어 대부분의 제품이 일본이나 독일의 제품. 어라? 여긴 일본인데?
그렇다면!!! 여기서도 '이갈이 방지 마우스 피스'를 구할 수 있겠군!!
그래서 바로 출발했다. 일단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돈키호테! 검색해보니 미야코섬에도 돈키호테(↗)가 있다. 담배를 태울 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날씨가 좋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불더니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진다. 변화무쌍한 날씨.
돈키호테 미야코지마점(ドン・キホーテ 宮古島店 ↗)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을 상대해서 그런 걸까? 일단 의약품을 파는 코너에 가봤는데, '코골이 방지 테이프'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를 볼 수 있었으나 '이갈이 방지 마우스 피스'는 찾을 수 없었다. 아... 이렇게 구할 수 없는 건가... 하면서 낙심하려는 순간. 음? 그러고 보니 '의약품' 코너에 있으렷다? 그렇다면 '약국'에서 판다는 얘기?
일본의 약국 중에는 규모가 엄청 큰 대형 약국들이 있다. 그런 곳들은 단순하게 의약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식료품이나 화장품도 함께 파는 대규모 마트 같은 식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돈키호테보다 훨씬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니 당연히 미야코섬에도 여러 군데에 대형 약국이 있을 터!
바로 검색해보니 근처에도 커다란 약국(ふく薬品西里店 ↗)이 하나 있다. 돈키호테에서 작은 수건을 하나 사서 주차장으로 나오니 자잘하던 빗방울이 갑자기 엄청나게 굵은 빗방울로 변한다. 어? 나의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건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약국으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곳에서 '이갈이 방지용 마우스 피스'를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쪽 이에만 끼우는 것이었고 내가 구입한 것은 위아래 양쪽 이에 끼우는 것.
사용법은 간단하다. 최초 사용하기 전에 7-80도의 뜨거운 물에 마우스 피스를 25-30초간 담근다. 그러면 딱딱했던 마우스 피스가 말랑말랑해지는데, 그걸 입에 물고 바깥쪽에서는 손으로 누르고, 안쪽에서는 혀로 눌러 자신의 치아 형태에 맞춰 모양을 잡는다. 그런 다음 찬물에 넣어 형태를 굳히면 사용 준비 끝.
사실 이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왜냐하면 내가 잠든 사이 내가 이를 가는지 안 가는지 나는 모르기 때문. 그래도 '이 정도의 준비를 했으니 조용하겠지'라는 마음의 위안을 삼기 위해 오전 내내 돌아다니면서 이걸 구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사용 후기를 좀 더 얘기하자면, 나에게는 효과가 꽤 있었다.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는 친구들에게 구박받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걸 물고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와 턱이 좀 뻐근해서 불편한 감이 없지는 않다.
비를 맞으며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갑자기 피로와 배고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돈코츠 라멘집을 검색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심지어 '오키나와 최강'이라는 문구를 스스로 사용하는 자신감 넘치는 집이 있어서 목적지로 설정하고 출발!
앗빠레(天晴 ↗)에 도착하니 어느새 비가 그치는 중. 가게 뒤편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어서 차를 주차하려는데, 어라? 철문이 내려가 있는 건가? 뭐지? 11시부터 영업 시작이라 그랬는데?
아아... 분명 인터넷으로 확인했을 때는 11시부터 영업 시작이었는데, 막상 가게에 오니 11시 30분부터 영업 시작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뭐 어쩔 수 없지. 30분 정도 차에서 눈을 붙였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입장! 가장 기본적인 돈코츠 라멘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넓은 규모의 가게였고, 가게 밖에서도 맡을 수 있는 진한 국물 냄새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괜찮은 라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면이 좀 더 얇고 살짝 덜 삶긴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약간은 도톰한 면이 푹 삶겨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굉장히 짜고 진한, 걸쭉한 스타일의 국물에 부드러운 차슈까지 아주 마음에 드는 라멘이었다. 감히 '오키나와 최강의 돈코츠'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괜찮은 집.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비를 살짝 맞아서 으슬으슬한 기운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딱! 하고 막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찬바람 맞으며 돌아다녔더니 컨디션이 안 좋은 건 사실이라...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며 몸을 좀 데웠다. 그러다가 숙소 주인장을 만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인실이 있는지 물어봤다. 마우스 피스를 구입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마음의 짐을 덜기엔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가득이었다. 1인실이 있긴 하지만 예약이 가득 차 있어서 방을 옮길 수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예약 상황이 바뀌면 알려달라고 말해두고는 오후에 돌아다닐 곳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관련 여행책자나 관광 사이트들을 보다 보면 보트를 타고 바닷속을 볼 수 있는 곳들이 있는데, 바닥이 투명한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닷속을 보는 건 예전에 해봤다. 헌데 미야코섬에는 커다란 배를 타고 배의 지하에서 바닷속을 보는 곳이 있다(↗)는 거다. 신기해서 검색해보니 지금 시즌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아, 뭐야. 괜히 바닷속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만 하게 해 놓고!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곳이 바로 미야코지마 해중공원(宮古島海中公園 ↗). 보트를 타는 게 아니라 건물 지하가 바닷속에 있기 때문에 걸어 내려가서 바닷속을 볼 수 있는 곳이란다. 그래! 여기로 결정!
그럼 공원 주변에는 볼만한 것이 뭐가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니 망그로브를 볼 수 있는 공원이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나... 에라 언제부터 계획 짜고 움직였냐. 이 정도 볼 것이 있으면 됐다 일단 출발하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미리 말하자면, 오늘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한참을 돌아다니게 된다 ㅋㅋ)
먼저 도착한 곳은 시마지리 망그로브 숲(島尻のマングローブ林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나 말고도 두 팀 정도가 구경을 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일단 날씨가 흐려졌기 때문. 해중공원이 목적지인데 날씨가 좋아야 물속도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혹시 시간을 좀 때우다 보면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다시 좋아지려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왕 오키나와, 게다가 본섬보다 훨씬 남쪽에 왔는데 계속해서 바닷가만 돌아다니다 보니 예전 이리오모테섬에서 느꼈던 '오지'의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망그로브 숲과 그 아래 진흙을 돌아다니는 망둥어들을 보면 이리오모테에서 망그로브 숲 사이로 카약을 타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 같았다.
일단 약 3~40분 정도 산책을 했는데, 날씨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하늘이 더 이상 나를 도와주지 않으려고 작정한 모양. 그리고 망그로브는 실컷 볼 수 있었지만 '오지'의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돌로 만든 다리도 있고, 나무 데크로 잘 정돈된 산책로를 가진 공원이었다.
하지만 물이 빠진 진흙에서는 망둥어와 게들도 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망그로브 숲을 거닐다 보니 '열대지방'에 왔다는 느낌은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적했다는 것도 좋은 점 중의 하나.
미야코 섬의 북쪽으로 달려 올라온 이유였던 해중공원(↗). 이제 본격적으로 그곳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일단 차를 세우고 꽤나 넓은 공원을 걸어 지나가야 했다. 사람들이 없어서 스산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성수기에 오면 뜨거운 태양 아래에 관광객들이 득시글 거릴 것이 분명한 곳이었다.
꽤나 멋진 해변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해중(海中)' 공원이라고 해서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지하로 내려가면 바닷속을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규모일 거라고 생각했더니 오히려 건물의 규모보다 외부 공원의 규모가 훨씬 큰 곳이었다.
어쨌든 입장권을 사서 건물의 아래로 내려가니 현재 수심과 오늘의 시야를 알려주는 푯말이 보인다. 밖에서 보던 아름다운 바닷속으로 4미터 내려왔다는 거구나. 날은 흐리지만 15미터 정도의 시야라면 뭔가 볼 수도 있겠는데? 하는 기대감도 살짝 들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와서 지하에 도착하니, 어라? 꽤 신비로운 느낌도 든다. 비수기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도 많은 편. 물이 탁한 건지 유리가 더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맑고 투명하게 바다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닷속의 물고기들은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침 먹이를 주는 시간과 겹쳐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냥 수족관에서 보던 것들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실제 바닷속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외부의 공원도 넓고 바다도 예쁘고 독특한 시야로 해저를 볼 수 있어서 추천할만한 곳이다.
다시 1층으로 올라오면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별로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잠깐 둘러보다가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마시고 싶어서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용과로 만든 스무디가 있길래 신기해서 한 잔 주문했는데, 맛은 마치 딸바(딸기+바나나) 스무디 같았다. 달콤하면서 약간은 퍽퍽한 느낌. 특별히 맛있지는 않은 그런 맛. 그래, 용과를 안 먹어본 것도 아닌데 기대했던 것이 실수. 그래도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니까.
아침부터 돌아다녔기 때문일까?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일까? 아, 아무래도 아침에 갑자기 내린 비를 살짝 맞은 데다가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안 좋았던 컨디션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노곤하게 몸을 좀 녹여야 하나? 이 멀고 외진 섬에 온천이 있을까? 에이, 설마... 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있다! 있어! 미야코 섬의 남쪽에 '온천'이 있다. 심지어 그 온천은 일본 최남단의 온천이라고 한다. 또한 일본 최서단의 온천이라고. 그러니까 일본에서 가장 서쪽이자 가장 남쪽에 있는 온천. 구글맵으로 경로를 찍어보니 약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온천을 하고 나면 축 늘어져서 반주와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시간을 좀 더 때울 겸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한 군데 더 들러보기로 했다.
목적지로 정한 곳은 오타케 성터 공원 전망대(大嶽城址公園展望台 ↗). 당시에는 '전망대'라는 글자만 보고 목적지로 정했는데 이제 와서 발음을 확인하려고 검색해보니 옛날에 성이 있던 자리였구나. 오타케(大嶽)는 큰 산이라는 뜻. 그러고 보니 꽤나 평평한 미야코 섬에서 오르막길을 운전하며 좀 올라갔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굉장히 가깝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아래가 바로 주차장. 조금만 걸어서 올라가면 전망대에서 미야코섬을 둘러볼 수 있는데, 지도에서 확인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근처에 바다가 없는 섬 한가운데에 있는 전망대이다 보니 '바다'를 기대하고 가는 전망대는 아니다. 하지만 섬 중심부에서 빙 둘러 경치를 구경해보고 싶었다.
대단한 걸 기대하진 않았고, 딱 그 기대만큼 별로 대단하지는 않은 경치를 구경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몸에 피곤이 꽤 쌓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온천이 딱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온천은 시기라(シギラ) 리조트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리조트가 이렇게 큰 규모일지 몰랐다. 지금 지도를 다시 보니 미야코 섬의 남쪽 가운데 부분에 골프장을 포함해서 엄청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별생각 없이 구글맵만을 믿고 운전을 하다가 길을 못 찾고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찾아냈다. 주위가 좀 황량(?)해서 온천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곳.
바로 시기라 황금온천(シギラ黄金温泉 ↗). 입장할 때 처음 방문했다고 하니 다음 날 다시 방문하면 30%던가? 50%던가? 여튼 할인권을 함께 준다. 설마 내일도 오겠어? 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는데, 온천의 시설이 꽤나 좋아서 다음 날 살짝 고민했다.
당연히 온천의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흔히 일본의 '온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느낌의 온천은 아니다. 고급 사우나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이들과 함께 가도 좋을 것 같은 게 수영복을 입고 나갈 수 있는 야외탕이 있다.
그러니까 입장한 다음 남녀가 구분된 탈의실로 들어가서 옷을 벗고 (당연히) 남녀가 구분된 온천에서 씻고, 온천을 하는데, 여기서 수영복을 입으면 남녀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야외탕이 있다는 얘기. 아니 야외 수영장, 워터파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정도의, 작지 않은 규모다. 어차피 나는 수영복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밖으로 나가보진 않았다.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에 잠깐 돌아가서 차를 주차하고, 복장을 다시 단정하게 한 다음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오키나와 전통식을 먹고 싶어서 많은 가게의 문을 열었으나, 모든 집에서 입장을 거부당했다. 혼잔데요. 예약 안 했는데요. 이 두 마디면 모두 고개와 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테이블 세팅을 보니 단체 관광객으로 이미 예약이 다 차 있는 상황인 듯.
도대체 낮에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오니 꽉꽉 들어차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메뉴를 고집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그러다가 들어간 작은 가게(Girolle, ジロール ↗). 혼자이고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괜찮다고 원하는 곳에 앉으라고 한다. 메뉴를 슬쩍 열어보니... 어라? 꽤나 가격이 높은 곳이다. 손님이 왜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나갈 순 없었다. 이미 많은 식당에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오래전 이시가키 섬에 갔을 때 이시가키 규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슬그머니 주인아저씨한테 여쭤보았더니, 10년 전이랑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금(여행 당시, 2017년) 가장 유명한 오키나와의 소고기는 오히려 오키나와 본토의 소고기이고, 가장 최근의 와규 올림픽인 11회 와규 올림픽(2017년, 5년마다 개최)에서도 오키나와 어떤 섬(이름을 들었는데 잊어버렸다)의 소고기가 높은 등수에 올랐다고 한다. 미야코섬의 소고기도 이시가키섬의 소고기만큼 맛있고 유명하니 한 번 먹어보라고 하신다.
그래! 어차피 가격이 높은 곳이라면 좋은 음식을 먹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미야코 규를 주문했다. A4 등급의 로스 스테이크. 참고로 일본의 소고기 등급은 A1부터 A5까지 숫자로 매기는데, A1 등급이 가장 마블링이 적은 등급이고 A5 등급은 우리의 투뿔보다 훨씬 심할 정도로 지방이 하얗게 내려있는 등급이다. A4 정도가 한우 투뿔과 비슷한 느낌.
솔직히 말하자면 10년 전에 이시가키 섬에서 먹었던 이시가키 규나 이번 여행에서 나중에 먹은 미야자키 규 같은 거랑 비교해보자면 크게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었다. 아마도 '로스' 스테이크였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얇게 썰은 고기는 역시 '고기'의 느낌이 덜한 법이니까.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생선 요리도 먹고 싶어 져서 추천을 부탁드렸다. 선뜻 '섬문어 먹물 소스와 무늬바리 스테이크'를 추천해주셨다. 당시에는 생선 이름을 번역하다가 '붉바리'인 줄 알고 엄청 좋아했었는데, 나중에 다시 검색해보니 무늬바리. 어쨌든 친구 어종이라 확실히 맛있었다.
전반적으로 '좋은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고 요리도 상당히 깔끔한 편. 그리고 마무리로 내어주신 에스프레소를 봐도 음식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쥔장 아저씨랑은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1년에 두 번, 각자의 생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계속 연락하는 중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숙소 쥔장에게 소개받은 바를 찾아 나섰다. ボックリーのチョッキ(↗)라는 이름인데, 외부에 Bockly's Recipe 같은 말이 쓰여 있는 걸로 봐서 'Bockly의 조끼' 라는 이름 이려나? 뜻이 뭔지 모르겠네;;
숙소의 쥔장도 굉장히 젊은(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를) 부부였는데, 소개해주는 가게 두 군데(어제 갔던 숯불 구이 집과 이곳) 모두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바의 마스터에게 물어보니 가게를 오픈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던 듯. 미야코섬 출신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전에 방문했던 이시가키를 떠올리며 미야코섬도 오래된 낡은 가게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섬 자체의 분위기가 젊어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전주나 경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왔으니 언제나처럼 첫 잔은 하이볼을 마시고 싶었다. 아무래도 오키나와니까 고쥬(아와모리를 숙성시킨 것)를 이용해서 하이볼을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시쿠와사(오키나와 특산 귤)를 반쪽 넣어준다.
옆자리에 혼자 앉아 계신 아주머니가 관광객이냐고 물어보면서 말을 걸어오길래 대화를 시작했다. 자기를 '미야코 마마'라고 불러달라면서 미야코섬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봐도 된다고. 혹시 라인(LINE)에 등록해도 되냐고 해서 서로 친구를 맺었다. 미야코섬에서 어디를 꼭 보러 가야 되느냐, 뭐하시는 분이냐 등등 이야기를 하면서 와인을 한 잔 얻어 마셨다. 근데 대화의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내가 취했던 그분이 취했던 둘 중의 한 명은 취했던 듯 -0-
이번엔 왼쪽에 앉은 젊은 아니 어린 여성분과 대화가 시작됐다. 마침 시기라 리조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오늘 저녁때 시기라 황금온천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거기 좋죠? 저도 좋아해요. 뭐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고 가다가, 짧은 일본어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어리고 예쁜 분과 대화를 하자니 긴장이 돼서 다시 매니저와 대화를 시작했다.
백바를 보는데 PISCO라고 쓰여 있는 투명한 술병이 보인다. 피스코? 피스코라면 남미에서 와인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드는, 페루의 소주 같은... 그 술이 아니던가? 머릿속을 뒤져봤더니 마셔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마셔봐야지! 주문을 하고 병을 보니 아르헨티나산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가 아니라 와인 자체를 증류한다고 한다. 와인을 증류하는데 투명한 색이 되다니. 신기하다. 사실 칵테일 베이스로 주로 쓰는 술인데 맛이 궁금해서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렇게 바에 앉은 사람들과 마스터와 함께 웃고 떠들며 마시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늦어져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고생해서 구한 '이갈이 방지용 마우스 피스'를 테스트해 볼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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