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ces/2017 일본 여행

36. 3주간의 도쿄 이야기를 시작하며

zzoos 2020. 10. 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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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 기간이 길다고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진 않았다.

 

도쿄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었다. 출장으로도 여행으로도 가본 적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았다. 한 국가의 수도이기는 하지만 역사/문화적으로는 교토가 더 수도답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소설,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익히 들어본 도쿄의 다양한 지명들.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쿄는 별로 내 마음을 끌어당기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예상 코스는 사실 큐슈와 시코쿠였다. 여행 도중 사람이 그리워져 친구들을 만나러 오사카로, 도쿄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나의 여행은 시코쿠를 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도쿄로 올라오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좀 쉬어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일주일 쯤 쉬고 나서 재충전이 된다면 어딘가로 다시 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원단 시장으로 유명한 닛포리의 거리 (좌) 동네 마트에서 장보기 (우)

 

도쿄에서는 친구네 집에서 머물렀다. 사업차 도쿄와 서울을 자주 오간다는 친구는 닛포리(日暮里)에 집을 하나 구해서 살고 있었다. 닛포리는 100여 년 전부터 조성된 섬유 상가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아직도 100여 개의 가게에서 원단과 재봉 용품을 팔고 있다고 했고, 실제로 친구네 집에서 닛포리역(日暮里駅)까지 걸어 다니면서 다양한 원단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닛포리역은 도쿄 지하철의 핵심 라인이자 우리의 2호선처럼 순환선인 야마노테선(山手線)이 지나가는 역이라 도쿄를 여행하기 위한 근거지로 삼기에 좋은 지역이었고, 무엇보다 집값이 도쿄치고는 저렴해 외국인이 많은 지역이라 한국 식당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순두부찌개, 제육볶음에 소주를 한국에서의 맛 그대로 맛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특히 교통비가 두려워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일찍 돌아온 날이면 슬리퍼를 끌고 걸어 나가 가볍게 소주 한잔하면서 부족한 알콜을 채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우에노 공원의 단풍 (좌) 도쿄도립미술관에서 관람했던 고흐 특별전 (우)

 

우에노역(上野駅)은 닛포리역에서 야마노테선을 타고 딱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역이고, 바로 앞에 우에노 공원(上野恩賜公園)이 있는 곳이라 가장 먼저 방문했던 곳이었다. 한창 노을이 물들어 있을 공원을 산책하고 싶기도 했지만, 도쿄 도립 미술관(東京都美術館)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중에 우에노 공원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 한번 얘기 하겠지만, 정확한 전시의 제목은 [ゴッホ展 巡りゆく日本の夢]였고 파파고의 도움을 얻은 다음 내 멋대로 의역하면 [고흐전 - 돌고 도는 일본의 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고흐의 작품들이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깊이 파고드는 전시로 다양한 고흐의 작품과 일본의 작품을 교차해서 전시하고 있었는데, 평일 낮인데도 인파가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 있는 전시였다.

 

심야식당의 배경이라는 고르덴가이 (좌) 한자표기가 재밌는 가부키초 일번가 (우)

 

솔직히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들이 명동 같은 번화가를 찾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볼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상술과 바가지만이 넘치는 곳이라는 생각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쿄에서 가장 관심이 없었던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신주쿠(新宿)였다. 그냥 번화하기만 한 곳일 거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가득한 시부야의 거리 (좌) 그 유명한 하치코 동상 (우)

 

신주쿠와 비슷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곳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시부야(渋谷)였다. 솔직히 도쿄에서 직접 발로 걸어 다니기 전까지는 신주쿠나 시부야나 비슷비슷한 이미지의 번화가라고 생각했었으니 싸잡아서 별 관심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신주쿠나 시부야에는 의외로 여러 번 갈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과 로드샵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쇼핑을 하기 위해서 찾게 되더란 말이다. 여행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귀국한 다음 여기저기 나눠 줄 선물을 쇼핑해야 했다. 여행 출발할 때와는 달리 많이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두꺼운 외투도 사야 했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의 앨범을 구하기 위해 시부야의 타워레코드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자주 가다 보니 괜찮은 가게를 찾기도 했는데, 신주쿠의 DUG 같은 바는 도쿄에서 가장 많이 들른 곳이었다.

 

미술관에 들르는 김에 잠깐 걸어본 롯폰기의 거리

 

롯폰기 힐스(六本木ヒルズ) 같은 건물은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했지만, 굳이 일부러 찾지는 않았는데, 안도 다다오의 전시를 보고 싶어서 찾아간 국립신미술관(国立新美術館)이 바로 롯폰기에 있길래 슬쩍 동네를 걸어 다녀보긴 했다.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에서 재밌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도쿄에서 지내는 동안 미술관을 세 군데 구경했다. 우에노 공원의 도쿄 도립 미술관, 롯폰기의 국립신미술관은 위에서 얘기했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전시였던 [パリ♥グラフィック ロートレックとアートになった版画・ポスター展]을 볼 수 있었던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三菱一号館美術館)이 마지막 하나다. 전시 제목이 엄청 긴데 파파고에 도움을 얻은 다음, 내 맘대로 의역해보면 [파리♥그래픽 - 로트랙과 아트가 된 판화, 포스터전] 정도일 거다. 물론 이 얘기도 따로 포스팅할 예정.

 

아사쿠사는 생각대로, 생각보다 훨씬 별로였다.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이 없던 어느 날, 아사쿠사(浅草)에 갔다. 아마도 교토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 물 위로 슬쩍 고개를 내민 날이 아니었을까. 일본에서 가장 큰 도시인 도쿄에서 지내면서, 내 마음대로 설정해둔 일본의 이미지를 가장 제대로 지니고 있는 교토를 그리워한다는 게 신기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었던 날이었을 거다.

 

그리고 아사쿠사는 첫눈에 나를 실망하게 했다.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골목에는 일본의 이미지가 없었다. 아사쿠사 역(浅草駅)에 내려 골목 안을 슬쩍 들여다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서, 급하게 아사쿠사를 빠져나왔던 기억이다.

 

해질녘의 시모키타자와 (좌) 해가 지고 나니 벼룩시장이 들어섰다. (우)

 

그에 비해 시모키타자와(下北沢)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일본의 이미지와는 다른, 현대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준 곳이었다. 아마 앞으로 일본을 떠올리면서 교토를 떠올리면 전통적인 이미지의 니넨자카, 산넨자카 거리가 떠오를 것이고, 현대의 일본을 떠올린다면 시모키타자와의 골목골목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 느낌.

 

빈티지 샵이 즐비하고 레코드 가게도 유난히 많이 보이는 시모키타자와의 골목골목에서는 높은 빌딩을 보기는 힘들었다. 도로의 폭이 줄어들면 감당할 수 있는 건물의 높이도 낮아진다. 가로등에는 신보를 발표한 3인조 여성 밴드의 플랭카드가 펄럭였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활기차게 걷는 젊은 사람들이 좁은 도로에서 서로를 비껴가고 있었다. 굳이 서울의 골목과 비교하자면 홍대의 이미지와 가장 겹치는 장면이 많다고 할 수 있을 거리.

 

번화하지 않지만 정겨운 상점들 (좌) 한적해서 좋았던 이노가시라 공원 (우)

 

키치조지(吉祥寺). 도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지명 중 유일하게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덕분이 아니라 노래 때문에 알고 있던 지명이었다. 델리 스파이스의 [키치조지의 검은 고양이]라는 노래. 처음 이 노래를 듣고 키치조지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을 해봤었다. 영어로 된 지명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본의 지명이라 놀랐고, 그 어감이 특이하고 묘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찾아가 봤다. 키치조지역(吉祥寺駅)은 도쿄 23구(도쿄도에서 중심이 되는 번화한 23개의 구)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었다. 역 근처의 상점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뭔가 뻔한 느낌이 있었지만 조금 더 걸어 내려가 이노가시라 공원(井の頭恩賜公園)을 만나는 즈음에서는 골목골목의 분위기가 한적하면서 정감 있는 곳으로 변했다.

 

도쿄의 이곳저곳을 작정하고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단연 키치조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신주쿠 골목에서 먹은 싸구려 야끼도리도 좋았고, 미술관에서 만난 로트렉과 고흐도 좋았다. 닛포리 골목에서 한국인 쥔장과 오랜만에 한국말로 떠들며 마신 소주도 좋았고, 시모키타자와에서 구제 옷들을 고르는 쇼핑도 괜찮았다. 고르덴가이의 분위기도 특이했고, 마트에서 잘 모르는 식재료로 장을 보고 직접 차려 먹은 밥들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딱 하나의 장면만 꼽으라면 키치조지에서의 산책이다. 살짝 기울어진 햇살의 각도도 좋았고, 그 햇살을 뿌려주는 아직 푸른 잎사귀들도 좋았고, 그 햇살이 부딪혀 흩어지는 호수 위의 잔잔한 물살도 좋았다.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 그 한적함과 적절한 간격으로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 외롭지 않음도 좋았다.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도 좋았고, 기대와 다른 모습이 주는 의외성도 좋았다.

 


 

자,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행의 마지막 18일 동안, 그러니까 3주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 동안 도쿄에서 지냈었다. 하루에 하나씩의 포스팅만 해도 18개의 포스팅이 되겠지만... 도쿄에서는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었던 날도 많았고, 별다른 포스팅 거리가 없는 날도 많았다. 그러니 앞으로 올리는 포스팅은 그동안의 포스팅과는 다르게 특정한 '날짜'의 시간 흐름에 따른 포스팅이 아닐 예정이다.

 

어떤 식이 될는지는, 솔직히 써봐야 알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