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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일주 14

30. 5분 바다 건너 시모노세키

어제저녁에 모지코(門司港)는 충분히 돌아봤다. 별로 큰 동네가 아니라 그 정도면 됐다. 오늘은 시모노세키(下関)로 건너갈 예정이다. 반나절 정도면 시모노세키의 남쪽 항구 주변은 돌아볼 수 있겠지. 그런 다음은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広島)로 넘어가야 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는 날이구나.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천천히 걸어서 모지항 옆에 있는 간몬연락선 매표소로. 배를 타고 5분이면 시모노세키로 건너갈 수 있다. 아, 오후에는 시모노세키에서 기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갈 계획이라 돌아오는 배표는 사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넘어오긴 해야 했는데... 어쨌든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어린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나 보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분위기로 간몬해협을 건넌다. 창밖을 보니 무지개다. 아이들도..

29. 첫 여행의 추억을 걷다

첫 해외여행은 아니었지만 익숙하진 않았고, 일본 여행은 처음이었다. 여행작가인 선배 형의 인솔을 따라 고쿠라와 모지코를 돌아봤다. 2008년 12월 31일이었다. 2009년 새해를 모지코역 광장에서 맞이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모지코라는 도시가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다시 한번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남겨두었다. 2017년 10월 31일. 모지코역(門司港駅)에 도착했다. 첫 여행의 기억. 추억의 장소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개찰구를 나섰는데... 어라? 이게 무슨 일이야! 보수공사 중이라 내 기억 속의, 멋진 건물을 다시 한번 볼 수 없었다. 너무 진한 감정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이지 너무 아쉬웠다. (검색을 통해 확인해보니 2019..

28. 가을 햇살, 킨린코, 커피 한 잔

2017년 10월 31일. 내 마흔두 번째 생일의 다음 날이자 시월의 마지막 날. 여행을 떠나 온 지 열아흐레가 지난 날. 조식 시간에 맞춰 식당에 내려갔더니 뭔가 엄청 복잡스러운 세팅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조식이다 보니 각각의 양은 많지 않은데 종류가 다양하다고 할까? 자리에 앉고 나니 따끈한 밥과 국을 가져다준다. 어제 저녁과 비슷한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흠잡을 건 없는데, 인상적이라거나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다. 오히려 료칸 하나무라(はな村)는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기억에 남아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목욕을 한 다음 체크아웃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모지코(門司港)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유후인에는 가을이 한창이었고, 마침 오늘은 맑게 갠 파란 하늘이 ..

27. 혼자, 생일, 온천

아침부터 여섯 시간이나 이동했다. 미야자키(宮崎)에서 유후인(由布院)까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열차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 코스지만, 지진의 여파로 정상 운행하지 않는 구간이 있어 특급 열차 - 일반 열차 - 버스 - 일반 열차 - 특급 열차로 갈아타고서야 겨우 도착한 곳. 유후인은 처음이 아니다. 꽤 오래전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유후인에 가고 싶었다기보다 혼자서 갈 수 있는 적당한 온천 료칸을 찾다가 유후인에 있는 료칸이 마음에 들었던 것뿐이다. 이동 코스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노베오카, 오이타, 벳푸가 더 좋은 위치였는데, 하루 전에 급하게 예약하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유후인 번화가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한 료칸인 하나무라(はな村)는 괜찮아 보이는 석식을 포함할 수 있었..

26. 열차와 버스를 네 번 갈아타고 유후인으로

생일이다. 여행 중에 맞이하는 생일. 혼자 돌아다니다가 자칫 잘못하면 센치한 기분에 빠질 수 있으니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자! 라는 생각으로 어젯밤에 급하게 유후인의 료칸을 예약했다. 오이타나 벳푸 아니면 노베오카 등 큐슈의 동쪽에 있는 료칸이라면 어디든 괜찮았는데, 하루 전에 급하게 예약을 하는 데다가 혼자서 묵어야 하고, 괜찮은 석식이 나와야 하는 곳을 찾다 보니 결국 유후인으로 결정. 아, 비용을 좀 쓰더라도 좋은 료칸을 잡고 싶을 때 RELUX라는 앱을 이용하는데, 결과는 항상 만족스러웠다. 급한 일은 없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다. 여섯 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짐을 정리하고 어젯밤에 사둔 쥬스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여유롭게 호텔에서 나왔다.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을 잡으면..

25. 가장 큰 마쯔리, 미야자키 신궁대제

우연히 오늘, 바로 오늘! 미야자키 신궁대제가 열리는 날이라는 소식을 알게 됐다. 네 시 즈음이면 미야자키 신궁 앞길에서 축제 행렬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남은 시간을 보내느라 평화의 탑(平和の塔))을 구경하러 갔는데, 의외로 거리가 멀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헤이와다이 공원(平和台公園)에서 미야자키 신궁(宮崎神宮)으로 돌아오는 데는 30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오르막을 올라가느라 힘을 다 썼기 때문일까? 어쨌든, 생각보다 멀리 다녀왔고,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덕분에 행렬의 시작을 놓치고야 말았다. 신궁 근처에서부터 느껴졌다. 사람들의 물결(?)이 미야자키 신궁 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행렬이 지나가는 대로변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미야자키 신궁대제(宮崎神宮大祭)는 매년 10..

24. 태풍이 지나간 미야자키

태풍으로 시끄러웠던 지난밤 잠을 잘 수 없어 넷플릭스로 기묘한 이야기 시즌 2를 다 보고 새벽에야 잠들 수 있었다. 엄청나게 흔들리며 소리를 내던 창문이 깨지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심지어 건물 자체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바람이 심했다.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으니 느지막이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그쳤고 무엇보다도 바람이 잠잠했다.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 조용한 풍경 안에 미야자키 과학기술관이 보였다. 저 동그란 돔 지붕은 어제 구경했던 그 플라네타리움의 지붕이겠지. 세계에서 세 번째던가? 여튼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의 플라네타리움이라더니 정말 크기는 크구나. 체크아웃 시간에 쫓기듯 밖으로 나와서 일단은 점심을 해결하러 라멘집에 들렀다. 어제 점심을 먹었..

22. 가고시마 밤 산책 아니 술 산책

호텔 뒤편의 공원에 올라 사쿠라지마를 구경하고, 시립 미술관에 들러 엄청난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슬슬 배가 고파오고 있었기 때문에 샤워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고시마는 말 그대로 '소츄의 도시'다. 현대 일본에서 소츄의 인기는 가고시마의 이모소츄(고구마류를 원재료로 한 증류주) 덕분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좋은 쌀이 잘 자라는 동네에서는 니혼슈(쌀을 원재료로 한 발효주. 우리가 흔히 사케라고 부르는 그것)를 주로 만들었다면, 고구마가 잘 자라는 남쪽에서는 이모소츄를 만드는 곳이 많았던 거다. 샤워를 하고 소츄바를 탐방할 기대에 부풀어 호텔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호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라? 8층에 온천탕이 있다..

21. 태풍을 피해 가고시마로

야쿠시마에 들어오면서 배편을 왕복으로 예약해뒀었다. 나가는 배편은 오늘 오후 4시. 이부스키(指宿)로 나가는 배였다. 지열로 덥혀진 뜨거운 모래 찜질로 유명한 이부스키는 가고시마현의 최남단에 있는 작은 도시. 야쿠시마에서의 트래킹이 몸을 피곤하게 만들 것 같아서 짠 일정이었다. 야쿠시마에서 열심히 놀고, 이부스키에서 찜질하면서 피로를 풀겠다는 야심찬(?) 계획. 하지만 태풍 22호가 올라오고 있었다. 하늘과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배편이 제대로 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음이 좀 급해졌다. 혹시라도 배가 뜨지 않으면 섬에 갇혀야 하니까 말이다. 일단 짐을 챙겼다. 3일 동안 머무르면서 짐이 조금 늘어나 있었다. 야쿠시마의 감자 소주인 미타케(三岳)를 반도 못 마셨다. 슈퍼에..

20. 야쿠시마 일주 드라이브

야쿠스기 랜드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여전히 운전하기 힘든 산길을 내려왔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운전을 하는데도 진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어려운 운전이다. 왕복 1차선의 좁은 길에 커다란 관광버스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날 정도였다. 초보운전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가장 어려운 운전이었다. 하지만 약 한두 시간 뒤에 '가장' 어려운 운전 기록은 갱신된다. 오늘의 목표는 야쿠시마 일주 드라이브였다. 일단 지도 상으로 봤을 때 일주도로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야쿠스기 랜드 트래킹 - 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웠지만 - 을 마치고 나서 해안도로까지 내려온 다음 시계 방향으로 섬을 돌기 시작했다. 어제 시라타니운스이쿄 트래킹을 했고, 오늘 오전에도 야쿠스기 랜드 트래킹을 했으니 근육..

19. 야쿠스기 자연관, 야쿠스기 랜드

어제의 트래킹이 너무 좋았다.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峡)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이끼의 숲(苔むす森)도. 그러다 보니 야쿠스기(屋久杉), 즉 야쿠시마에만 자란다는 야쿠 삼나무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 오전의 첫 번째 일정은 야쿠스기 자연관(屋久杉自然館)으로 정했다. 숙소를 떠나 30분 정도 달렸을까? 야쿠스기 자연관에 도착했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회색빛의 건물이 좀 스산하게 보이는 기분이었지만, 주변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서 숲 속에 있다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텅 빈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 정도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도 직원의 차였겠지? 그렇다면 관람객은 나 밖에 없다는 얘긴가? 입장료 600엔을 내고 들어가니 규모가 그리 큰 박물관은 아니다. 하지..

17. 야쿠시마에 온 목적, 이끼의 숲으로 가는 길

전날 푹 쉬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너무나 가보고 싶던 곳을 갈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트래킹 준비를 했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신발 끈을 꽉 조였다.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위에 걸칠 옷도 하나 더 준비하고, 혹시나 중간에 당이 떨어질까 봐 초코바를 두 개 정도 가방에 넣었다. 어차피 주차장까지는 차를 가지고 갈 거라서 차에는 여벌의 옷도 챙겨두었다. 민숙 후렌도에서 출발해 시라타니운스이쿄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좁은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면 20분 정도가 걸릴다고 나오지만 초보운전자에겐 두 배가 훨씬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왕복 1차로인 구간이 많은 데다가 차선도 굉장히 좁은 길이라서 반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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