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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토 여행의 기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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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토 여행의 기억

zzoos 2018.02.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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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었다. 일도 재미없고 일상에 찌들어 - 아, 이런 지겹도록 평범한 표현이라니 -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업무 시간에 동생들과 메신저로 얘기를 하다가 언제나처럼 '아~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라고, 말 그대로 별 의미없이 한 마디를 던졌다.

"오빠! 교토 가세요!"

같이 얘기하고 있던 동생 중 하나가 강력하게 추천했다. 아니 추천의 수준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꼭! 가세요. 오빠는 교토를 무조건 좋아할 거예요. 휴가도 있잖아요. 무조건 가세요!" 너무나 강력한 추천 아니 명령에 책상 아래로 빠져들 것 같이 흐물거리던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았다.

"그렇게 좋아?"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무조건 떠나라고 했다. 바로 비행기 표를 알아봐 주었다. 그러더니 사이트를 하나 알려주고는 호텔을 빨리 잡으라고 했다. 처음 접속해본 사이트에서 어리버리하게 호텔을 고르고 있자니 '가와라마치' 주변으로 호텔을 잡아야 밤에 놀고 걸어 돌아갈 수 있을 거라며 호텔까지 추천해줬다.

순식간이었다. 강력한 명령에 따라 충동적으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했다. 그러고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교토로 출발했다. 정말이지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식당은 어디를 가야하는지, 관광지는 어디가 유명한지, 술은 어디서 마셔야할지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그러고보면 그동안의 일본 여행은 홋카이도, 오키나와 그리고 큐슈였다. 혼슈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혼슈를 가게되면 아마도 교토가 아닐까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생의 한 마디가 그 흐릿한 생각에 파지직 전원을 연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사이 공항에 내려 특급 하루카를 타고 교토에 도착했다. 교토역에 내려서 바라본 교토의 첫 이미지는 생각과 많이 달랐다. 뭔가 엄청 전통적인 건물이 잔뜩 있을 것 같았는데, 마치 하카다 역 앞에 서있는 것처럼 그냥 번화한 도심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여행의 설레임을 안고 택시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아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호텔 이름을 말했으나 새로 생긴 호텔이라 기사님이 위치를 몰랐기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여주고서야 출발. 도로를 달리면서 '아, 뭔가 다르다'라는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와라마치역과 시청역 사이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어두고는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돌아보다가 깨달았다.

정확했다. 내가 교토를 좋아할 거라는 동생의 추천은 100% 적중했다.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처음엔 지하철을 이용했다. 버스를 자유자재로(?) 탈 수 있게 된 건 첫 여행 때가 아니다. 이때는 지하철과 전차를 주로 이용했고, 잘 모르겠으면 택시를 탔다. 아,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어쨌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일단은 숙소 주변의 니시키 시장, 가와라마치 번화가, 기온 상점가, 본토초와 기야마치를 돌아다녔다. 역시 교토에 처음 도착한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은 본토초였다. '아, 오늘 밤은 여기서 놀게 되겠구나'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곳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비싼 거리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야사카 신사를 구경하고 골목골목을 걷다가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를 만났을 때 이미 나는 교토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키요미즈데라(청수사)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란. (본문에 첨부한 사진은 첫 여행 때 찍은 건 아니다.)

3박 4일의 첫 교토 여행은 대단히 뻔한 루트였다. 금수사, 은수사, 청수사, 아라시야마 그리고 교토 시내. 일부러 뭔가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고, 많은 것을 보고 와야 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또 오게될 곳이었다. 분명히 자주 찾을 곳이었다.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여행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 약 20일 정도를 교토에서 지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시간만 나면 교토에 갔다.

낮에는 발길이 닿는대로 돌아다닐 수가 있었는데, 해가 지고 밤이 되니 문제가 좀 생겼다. 도대체 어느 식당을 가야할 지 어디서 술을 마셔야할 지 하나도 모르겠는 상황. 여행 내내 교토를 추천해준 동생과 메신저를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 동생이 - 마치 숨어서 지켜보며 무선으로 지령을 내리는 TV 예능 프로처럼 - 어디어디 가서 저녁을 먹고, 어디어디로 가서 술을 한 잔 하면 된다는 것을 메신저로 일일이 지시했고 그 지령은 매번 성공했다.

그렇게 소개받은 가게 중 하나는 결국 나도 단골이 되었는데, 처음 찾아갔을 때는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했다. 본토초의 끝자락에 있는 쿠로(黑)라는 작은 바. 마스터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외국인 손님도 많은 가게였다. 이 가게는 '절대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로 좀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지만 이렇게 밝히는 이유는 이제 문을 닫았기 때문. 마스터가 다른 사업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얼마나 자주 다녔으면 마스터가 직접 나에게 라인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줬다 -0-).

또 다른 가게 하나는 가와라마치의 loft 건물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PUB Karr 라는 곳인데, 밝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고 스페인 돼지가 아닌 일본 돼지로 만든 생햄 - 작은 가게에 들어가면 커다란 돼지 다리가 보인다 - 이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인테리어 때문인지 젊은 여자 손님들이 많았던 곳. 두 번째 방문했을 때 햄이 너무 말라있어서 실망. 그 이후로는 잘 안 가는 집이긴 하다.

그 외에도 시라카와(白川)를 바라보며 가이세키 요리를 먹을 수 있었던 기온 타쿠마 시라카와점(琢磨 ぎおん白川店, 구글 지도를 보니 여기도 문 닫았다고 되어있네;;)이라던가 간사이식 스키야키의 매력을 알게 해준 모리타야 본토초점(モリタ屋 木屋町店) 같은 곳도 모두 동생의 소개 - 라고 쓰고 메신저를 통한 조종이라고 읽는다 - 로 방문했던 집들이다.

동생이 소개해준 곳 외에도 기야마치와 산조가 만나는 곳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는 Time's 라는 건물 - 자그마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다 - 2층? 3층? 에 있는 데킬라 전문 바라던가(데킬라만 몇 백 종류를 보유), 본토초 가운데에 있는 진 전문 바, 먼지 냄새가 가득해서 기침이 나올 정도인 LP바, 잘생긴 아들 바텐더와 연륜이 그득한 아버지 바텐더가 함께 바텐딩을 하는 바 등등 재미난 곳들이 너무나 많은 곳.

교토 얘기를 계속 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 정도에서 줄여두도록 해야겠다. 각각의 식당이나 바에서 먹은 음식이나 술들은 별도의 포스팅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도대체 언제?).

일본의 곳곳을 여행해봤다는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디가 제일 좋았냐?" 또는 "어디를 제일 좋아하냐?"라고 물어본다. 사실 여행을 하다보면 다양한 에피소드도 벌어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 때문에 각각의 여행이 그리고 곳곳의 지역에 모두 특별한 추억이 생기게 마련이라 쉬운 대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굳이 "어디를 제일 좋아하는지" 대답하자면 역시 오키나와(본섬말고 이시가키나 미야코)와 교토다.

아, 그러고보니 교토에 다녀온 지 오래됐다. 다시 교토를 찾으면 가라스마역과 니조 성 사이의 블럭을 샅샅이 뒤져볼 생각이다. 본토초나 기야마치와는 다른 분위기의 교토, 교토의 일상적인 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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