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ers

출근길에

zzoos 2006. 9. 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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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우 아름답고, 지적이고, 섹시하고, 우아하고, 젊은... 그러니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여자가 있다. 그 여자와 만나는 남자가 하나 있다. 단순한 '만남' 보다는 '사귄다'거나 '동거'한다거나 또는 '결혼'을 해도 좋다. 헌데 그 남자는 그런 완벽한 여자와 어울릴만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다. 뭐 예를 들어 나이도 많고, 외모도 별로고, 똑똑하지도,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전형적인' 그저그런 사람이다. 헌데 둘이서 '열렬히' 사랑을 한다. 남자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을 다바쳐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 순간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헌데, 그러기를 얼마간(몇 주? 몇 달? 몇 년? 어느 정도가 좋으려나)... 그녀는 본색을 드러내는데, 인간이 아니었던 거다(귀신, 구미호, 이무기, 뱀파이어, 드라큐라 뭐든 좋다). 그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만한 남자를 골라 이용했던 것. 결국은 그 남자를 죽여버린다(또는 잡아 먹는 다거나).

이런 스토리, 너무 뻔한 고전 스토리아닌가.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그 남자의 행복에 대한 것이다. 그저그런(?) 여자 만0나서 결혼하고, 지지고 볶고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나'라고 고민하면서 쏘주잔을 털어넣는 나날이 평생이어지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잠깐을 살 수 있었던 그 남자는 행운아였던 것이 아닐까? 만약 그 남자가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축복이었을 것이다.

<매트릭스>를 보면서도 그랬고, <13층>을 보면서도 그랬다. <아일랜드>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비슷했고. 하여간 '장자지몽(莊子之夢)'류의 영화나 소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꿈은 깨지 않는 것이 행복한 거라고. 행복한 꿈을 꾸면서 죽을 수 있다면 대단한 행운이라고.

이런... 출근길에 죽음을 생각하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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