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ers

기초 문법

zzoos 2006. 10. 1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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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플러스펜 얘기를 썼더니, 가만히 가만히 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매 시간마다 제도 연습만 하다가 처음으로 '집'을 설계해오라고 했던 과제를 받고, 다들 들뜬 마음으로 그 집에 살게 될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시나리오도 만들고, 여기저기 지적도도 구해서(지적도는 나눠줬던가?) 대지 분석(Site Analysis)이랍시고 지도에 마킹도 하고... 여튼 참 요란하게, 그리고 시간과 공을 들여서 수업시간에 맞춰 도면을 가져갔다.

교수님은 도면을 여기저기로 집어 던지시며 소리치셨다. "이게 집이냐! 이 화장실이 문이 열릴 것 같아? 여기서 어떻게 볼일을 보라는 거냐!" 처음 과제 검사를 받았던 친구는 화장실 크기를 잘못 생각했고, 그 결과로 화장실 문을 열면 안쪽에서 변기와 부딪히는 크기로 도면을 그렸던 거다. 또 다른 친구에게는 "넌 계단 올라갈 때 게걸음으로 올라갈래?"라며 도면을 집어 던지셨는데, 그 친구의 도면에는 계단참의 폭이 너무 좁아서 정상적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 없도록 그려져 있었다. "이거 아주 미치겠구만, 넌 화장실이 안방만하냐?"라는 소리를 들은 친구의 도면은 실제로 화장실과 안방의 크기가 비슷한 정도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난 그렇게 큰 소리를 듣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주로 내가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수정하는 버릇이 있다. -_-;;)

그 날 이후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집을 설계할만큼의 건축 문법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씀하시고는 각종 계단, 문, 창호, 화장실 등 건물을 구성하는 기본 유니트를 여러가지 종류로 그려보고, 그 스케일을 확인하는 과제를 계속 내 주셨고, 그 과제가 끝난 다음 다시 그렸던 주택의 도면은 확실히 그 전보다 훨씬 건축 도면다워졌었다. '건축 문법'을 몰랐던 녀석들이 아무리 머리짜내고 시간과 공을 들여도 제대로 된 도면이 나오기는 매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문법을 알아야 된다는 얘기.

이 얘기는 여러가지 경우에 통용된다. '연애 문법'을 모르는 사람은 연애에서 고생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남자는 '여자의 문법'을 모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문법'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의사 소통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하아.. 이게 비단 남녀 문제 뿐이랴. 남녀 뿐만 아니라 남남, 녀녀의 관계에서도 그럴 것이다.

또한, 인간 관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그렇다. 도대체 어디에 가면 '인생 문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런거 알려주는 학원이라도 있다면 참 좋으련만, 그건 누가 알려주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내 인생이 화장실 문이 변기에 부딪히고, 계단을 게걸음으로 올라가야 하는 인생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갑자기 그 기초 문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문법 공부 좀 해야겠다.

문법만 안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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