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바(Bar)라는 곳에 가본 적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대학 시절이었을 거고, 우루루 몰려가서 맥주를 마시거나, 선배형들에게 양주를 뜯어 먹을 때였을 거다. 그 시절엔 그런 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와는 다른 세계인 것 같아서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처음 바에 혼자 갔던 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배동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어느 날인가 술이 고픈 퇴근 길. 만날 사람이 없어서 방배역을 배회하다가 근처의 더 플레어(The Flair)라는 곳에 혼자 들어갔다. 알 수 없는 영어가 잔뜩 씌여있는 바들은 도무지 가격을 짐작할 수 없는 데다가 정말 '술만' 마시는 곳인지 구별하지를 못하겠어서 선뜻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플레어는 대학로에서 친구들과 가봤던 곳이었고, 플레어 쇼(Flair 란 사전적인 의미 외에도 바텐더들 사이에선 '병을 공중에 던지고 받으면서 칵테일을 만드는 쇼'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를 멋지게 보여주는 곳이란걸 기억했다. 왠지 혼자 가도 바에 앉아서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예상은 멋지게 적중했다. 혼자 들어가 바에 앉았고, 혼자 왔다고 얘기하니 바텐더 한 명이 말을 붙이면서 심심하지 않게 해줬다. 맥주를 마셨고, 데킬라를 마셨다. 그러고는 꽤 자주 그곳에 들렀다. 바텐더들과 많이 친해졌다. 심지어 아직도 연락하는 바텐더가 있을 정도.
그 때부터 혼자 바에 가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바에 가면 꼭 바에 앉았다. 바텐더들과 얘기하는 것이 재밌었다. 그들은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끼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썰렁하 분위기가 연출되면 말을 걸어 주었다. 또, 내가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게 말상대가 돼줬다.
단골 바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배동의 더 플레어, 홍대의 N, 건대의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등등 마음이 드는 바를 찾으면 단골을 만들었다. 친한 바텐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게 영업이 끝나면 같이 당구를 치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비번인 날은 같이 술도 마시는 친구들도 생겼다.
언제 부턴가 바에 잘 안가게 됐다. 내 마음에 드는 바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온통 섹시바 천지. 쓸데없이 가격만 비싸고, 바텐더들은 별로 싹싹하지도 않고. 그나마 사무실이 수서에 있을 땐 자주 갔던 곳이 있었지만 사무실을 옮기면서 거리가 애매해진 관계로 잘 가지 않는다.
오늘 날씨가 꿀꿀해서 그런지 문득 혼자 바에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고 싶어 졌는데, 도저히 떠오르는 바가 없다. 단골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친절한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절거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