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일천구백구십사년. 그러니까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죠. 입학 선물로 PC를 조립했습니다. 당시 최고 사양이었던 2400bps 모뎀도 끼웠죠(당시 속도 단위가 bps, byte per second 맞죠? 기억이 가물가물). 바로 그게 '통신'의 시작이었습니다. 끼우기만하고 전화비 많이 나올까봐 접속은 못하고 있었는데, 과선배가 모뎀도 있으면서 왜 하이텔(Hitel)을 안하냐고 닥달하더군요. 그날 밤 바로 하이텔에 가입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디(ID)라는 걸만들었네요.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결정한 것은 lonelyme 였어요. 당시의 감수성은 그런 닉네임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디는 이미 사용중이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학교 선배가 쓰고 있더군요. 지금은 너무 유명해지신 류한석님이셨습니다. 하이텔에선 lonelyme로 활동하셨죠. 같은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됐는데 "형이 선점하는 바람에 내 아이디가 이모양이 됐다"고 한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lonelyme를 쓸 수 없어서 만들었던 아이디가 lonelykk 였습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 걍 lonely 뒤에 아무거나 같다 붙인 거죠. 이 아이디를 꽤 오래 사용했습니다. 대학 졸업한 다음에 아이디를 바꾼 것 같으니까 10년도 넘게 썼네요. 그래서 msn 아이디는 lonelykk 입니다. 헌데 lonelykk... 아이디를 이걸로 쓰긴 쓰는데, 게시판에 글을 쓰고 맨 밑에 서명으로 남기기에는 좋지 않더군요. 발음도 명확하지 않고... 해서 서명으로는 (쭈)라는 걸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이름을 발음할 때 마지막 글자가 된소리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제 아이디말고 '쭈'라고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미로 사진을 시작했죠. 그리고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습니다.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된거죠. 바로 도메인이었습니다. lonelykk 라는 복잡한 스펠링과 불명확한 발음이 싫더라구요. 어차피 사람들은 저를 '쭈'라고 부르니 뭔가 다른 아이디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아이디가 바로 zzoos 입니다. 발음은 쭈스. 그리고 도메인은 zzoos.net 으로 결정했습니다. .com이나 .co.kr은 뭔가 기업 같잖아요. 그리고 쭈스네(ㅅ)라고 발음도 부드럽게 이어지고 말이죠.
그 때부터 제 아이디는 zzoos로 통일됐습니다. 아직도 쓰고 있고,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도메인도 계속 유지할 거고요.
자... 그러다가 온라인 게임이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zzoos 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인터넷과 다르게 온라인 게임에서는 캐릭터이름이 영어인 것이 대단히 불편했습니다. 귓속말을 하는 것도 귀찮아지고... 그래서 그때그때 다른 캐릭터명을 만들어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WOW(World fo Warcraft)를 시작하게 됐고, 점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죠.
아는 사람들이 늘어가니까 이제 길드를 만들자고 하더군요. 길드 명은 <Republic of Horde> 그러니까 호드 공화국입니다(호드란 WOW에 등장하는 진영의 이름입니다. 얼라이언스 진영과 대립하고 있는 진영이죠). 그리고 캐릭터 이름들을 일관성있게 만들자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국방부장관, 여성부장관,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장.... 재밌는 아이디어였죠. 그래서 적극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장관이름들을 다른 길드원들에게 선점당했습니다. 그래서 "공화국에 전부 장관만 있으면 어떡하냐! 말단 공무원도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구급공무원'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에 길드 카페를 만들자고 하더군요. 닉네임을 캐릭터 명으로 맞추랍니다. 가서 입력을 하다 보니까... 네이버 닉네임은 네 글자까지 밖에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닉네임은 '구급공뭔'이 됐습니다.
요즘 네이버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는데 "왜 공무원도 아니면서 닉네임은 구급공뭔이냐?"는 질문을 아주 많이 받습니다. 바로 위와 같은 이유죠. 사실 마지막 부분만 설명드리면 되는데... 괜히 아이디 변천사 같은 것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lonelykk, zzoos, 구급공무원, 구급공뭔. 모두 저를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들입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것도 있지만 저에게는 다 소중한 단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