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전 수요일이었네요. 삼성동 봉은사 옆의 삼성국수에서 작은(?) 모임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이태리 와인. 버럭훼인 형님이 와인을 준비해주셨네요. 총 인원은 8명. 메뉴는 한식이었습니다. 와인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거였어요. 헌데 너무 좋은 와인들을 마셔서 입이 호강했네요. 리스트와 메뉴는 아래와 같습니다.
:: 와인 리스트
- In Situ Winemaker's Selection Chardonnay 2007, Acongcagua Valley, Chile - Castiglion del Bosco Dainero, Toscana, Italy(IGT) - Fontanafredda Briccontondo Piemonte Barbera 2006, Piemonte, Italy(DOC) - Tenuta San Leonardo Villa Gresti, Trentino-Alto Adige, Italy(IGT) - Librandi Gravello, Calabria, Italy(IGT) - Vincent Girardin Bourgogne Rouge 2006, Bourgogne, France - Cennatoio Rosso Fiorentino, Toscana, Italy(IGT) - In Situ Winemaker's Selection Cabernet Sauvignon 2006, Acongcagua Valley, Chile
:: 메뉴
- 모듬전 - 모듬 수육 - 매운 닭국수(?) - 어복쟁반 - 피칸 파이
와인을 마신 순서는 좀 헷갈리는데요.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지요. 열흘이 넘게 흘러서 맛이 잘 기억날 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마신 건 인시투 샤르도네였습니다. 칠레의 저렴한 그러니까 통통튀는 샤르도네를 생각했는데 이 녀석은 점잖더군요. 프랑스의 샤르도네 중에서도 묵직한 녀석들을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모듬전과 함께 마셨는데 오히려 좀 통통 튀는 녀석들이 전의 기름기를 지워주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이 와인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걸 마시고 드는 생각은 '역시 난 쏘비뇽 블랑이구나'. 맛이라는 건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거니까요.
이게 두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헷갈리네요. 와인으로 맛을 기억하지 않고 순서로 기억하는데... 이래서야 제대로 시음기를 적을 수가;;; 어쨌든 이게 두 번째 와인이라면! 다이네로는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90%나 되는 멜로의 영향이겠지요. 브리딩 거의 없이 마셨는데도 이 정도의 맛이 느껴지는 와인들이 좋습니다. 입맛이라는 게 자꾸 변한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저는 쏘비뇽 블랑과 멜로를 좋아합니다. 피노누아는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 모르는 느낌. 이태리는 네비올로 정도일까요?
마찬가지로 따자마자 마시기 좋았던 브리꼰똔도.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바르베라는 쉬라의 느낌이 납니다. 이태리 품종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겠지만요. 병을 하나 열 때마다 더 좋아집니다. 이렇게 자꾸 좋아지면 메인 와인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와인이 이날의 베스트 와인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멜로 90%로군요. 나머지는 까르미네르. 혀에 닿는 질감도, 피어 오르는 향도,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도, 피니시도 딱 제가 좋아하는 그런 와인. 몰래 숨겨두고 혼자 먹고 싶었습니다.
그라벨로. 신의 물방울에서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때 고추밭 옆에서 자란 포도라서 매운 맛과 마리아주가 좋다고 했던 와인입니다. 그래서 메뉴 중에 매운 것을 하나 넣었다고 하시더군요. 뭐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매운맛과 어울린다고? 글쎄...' 정도. 약 한 시간의 디캔팅을 거쳤습니다. 좋은 와인이었습니다. 시음 노트를 바로바로 적어야 맛을 표현하는 말들을 많이 적을텐데... 어쨌든 좋았다는 건 사실.
정확한 순서는 기억이 안나지만 메인 와인을 마시기 전에 4~5번째 즈음 마셨습니다. 이 녀석만 브루고뉴였지요. 이건 비바 형님의 협찬. Vincent Girardin. 분명히 어디선가 마셔 본 생산자인데... 영 생각이 안나네요. 여튼 브루고뉴 루즈. 뭐랄까 제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브루고뉴 루즈'의 맛입니다. 과연 그게 전형적인지는 모르지만 제 미천한 경험 속에서는 그렇습니다. 밝고 가볍고 화사합니다.
드디어 메인 와인. 유기농법을 쓴 수퍼 투스칸입니다. 약 한 시간 반의 디캔팅. 하지만 여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막 슬슬 열리려는 찰나였어요. 조금 더 있었으면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까쇼에대한 막연한 반감 같은 것 때문에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역시 깊이가 있었습니다. 뭐 자세한 건 기억이 안나서;;; 토스카나 지역의 유명 화가 '로쏘 피오렌티노'의 이름을 땄고 그의 작품인 '피오렌티노'를 그대로 옮겨 담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시투 까쇼. 솔직히 이젠 더 이상 맛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분명한 건 그다지 까부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인시투의 와인메이커스 셀랙션 시리즈의 공통된 분위기인 듯. 프랑스의 점잖음을 닮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부턴 음식입니다. 인시투 샤르도네와 같이 먹은 모듬전. 정확하게 어떤 와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드 와인 중 하나와 해물전 중의 하나를 같이 먹었을 때 입안에 굉장히 씁쓸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런 걸 없애고 음식과 와인의 맛이 서로 돋보일 때 마리아주가 잘 됐다고 하는 거겠지요.
한쪽은 돼지고기 수육. 한 쪽은 소고기 수육. 물론 딱 보면 아시겠죠?
정확한 이름이 기억 안나는 매운 닭국수(?). 그라벨로와 마리아주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나왔습니다. 국수 자체도 맛있었고 그라벨로도 맛있었는데, 과연 그라벨로가 매운 맛과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어복 쟁반이 나왔습니다. 푸짐하지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배는 뻥뻥. 으악!!
픽셀님이 손수 배추를 찢어 주십니다.
아. 정말 푸짐한 어복쟁반. (언제나 그렇듯이) 어복쟁반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를 나눴지요. 삼성국수의 이런 한식 메뉴들 모두 정갈하고 맛있습니다. 먹고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영업시간을 넘겨버리는 사태가... 하지만 저희끼리 남아서 와인은 모두 처리하고 헤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요건 모님이 협찬해주신 피칸 파이. 배가 불러 죽을 것만 같았지만 한 조각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이태리 와인을 마시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갔더니만 토착 품종은 바르베라 한 가지. 심지어 산지오베제는 없었어요. 메를로와 까쇼의 향연. 하지만 모두 맛있고 마시기 좋은 와인들로만 골라오셔서 정말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버럭형님, 비바형님, 픽셀님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참석했던 모든 분들께는 반가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럼 다음 모임에서 또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