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씩의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다. 매일매일 고민 중이다. 오늘은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야할지. 사실 떠오르는 소재들이 있긴 한데, 매번 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쓰는 것 같아서 나름 필터링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글을 아예 쓰지 못하는 날이 생긴다. 사실 뭐 그러고보면 이틀 연속으로 글을 쓴 날이 한 번 밖에 없다.
어쨌거나 주말 내내 '이번엔 좀 말랑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마침 떠오른 소재는 매우 딱딱한 소재여서 - 이 소재는 나중에 정리해서 한 번 써보기로 - 어찌하면 말랑말랑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주말을 훌쩍 흘려보냈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 자신이 '말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강한 강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공대 출신으로 IT 회사를 오래 다닌 남자라는 선입견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첫인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 같다고 말하는 외모와 전공이 건축이라는 것에 부응하기 위하는 마음이랄까. 나는 언제나 내가 말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려고 신경 쓴다(차마 '노력'한다고 못하겠다;;;).
말랑함이라고 하면 성격이나 가치관이 유연하다는 뜻일 수도 있겠고 물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도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말랑함은 그런 쪽 보다는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쪽에 다 가깝다.
언젠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술 취한 새벽 블로그에... 내가 한없이 딱딱해져 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푸념들을 올리곤 했다. 물기가 다 말라버린 스폰지처럼 푸석푸석한 모습.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가루로 흩어져 버릴 정도로 퍽퍽하게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오빠는 연애를 할 때 글이 훨씬 좋은 것 같아"라는 친한 동생의 얘기를 듣고 예전의 글들을 쭉 살펴봤던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사실이었다. 그녀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글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애가 진행 중일 때는 글들이 더 폭신하더라.
사실 내 글이 좀 딱딱한 이유는 짧지만(3년?) 기자 생활을 했었다는 것도 한 몫을 할 것 같다. 기사문이라는 건 가장 딱딱한 형식의 글 중 하나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문제다. 어떻게 포장하려고 해도 글에는 성격이, 그 사람이 묻어나온다. 그러다보니 별로 재미없고, 딱딱한 내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더더욱 '말랑한' 글도 쓰려고 노력하는 지 모르겠다.
덧말.
이 포스팅의 제목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서 빌려왔다. 어쩌면 내가 나에게 강요하고 있는 그 '말랑함'이라는 것도 사실은 실체가 모호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건 그냥 읽는 사람들이 판단하도록 놔둬야 하는 것일 거다.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스스로에가 무언가를 '강요'씩이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붙인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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