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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 문학과지성사
김연수의 책은 많이 읽진 못했다. 아니, 몇 편의 단편을 제외하면 [꾿빠이 이상]이 유일하게 읽은 장편 소설일게다. 그때에도 그랬다. 책을 덮고 한참동안 소설 마지막 구절이 입에서, 가슴에서 맴돌았다.
테잎이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상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굳빠이
그의 소설은 이상하리만치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솔직히 [꾿빠이 이상]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남은 상채기만 기억날 뿐. 하지만 그걸 까맣게 잊고 다시 그의 소설을 집어 들었다. 실수였다. 가을에 그의 소설을 시작한 것은. 읽는 내내 나를 쥐어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가 사랑에 빠지면 나도 사랑에 빠졌고, 그가 투쟁의 의지에 불타오르면 나도 같이 타올랐다. 그가 죽음의 고통으로 내몰릴 때 나도 같이 눈을 감았고, 그가 마약에 빠져있는 동안 나도 의지를 잃고 비틀거렸다.
참으로 희안한 일이다. 소설의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내가 심하게 휘둘린 기억만이 남았다. 민생단이 무엇인지, 왜 그들이 서로를 죽여야만했는지, 가깝고도 먼 간도땅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책을 덮은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건만 설명하기 어렵다. 역시나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읽은 부분이 가슴에서 맴돈다.
그때 뒤쪽에서 남총련의 깃발을 든 학생들이 나타났다. 그 깃발을 보는 순간, 우습게도 안심이 됐다. 우리 세대에게 남총련이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깃발을 들고 전경들 앞에까지 나온 남총련 학생들은 대오를 갖춰 자리에 앉았다. 남녀 학생들 몇몇이 앞으로 나갔다. 구호를 외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학생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중략)
결국 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내 오랜 열망을 이룰 수 있었던 건 그날 밤 효자동 전경들 앞에서 춤을 추던 학생들 덕분이다. 공포의 순간에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게 해준 그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늙다리들은 더 이상 춤추지 못한다. 나는 춤추는 사람들이 좋다. 나 역시 그렇게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학생들처럼.
이상하게도 저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같이 피식거렸다. 그러고는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지하철 2호선 잠실발 역삼방면 역삼역 9-3번 출구 오전 9시 58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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