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로드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저녁 메뉴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나는 강하게 회를 먹고 싶다고 주장!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오랜만에 자연산 활어가 먹고 싶기도 했고, 현충일 연휴라면 동해의 바다를 보아야 한다는 취소된 여행 계획의 일부를 실현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산 회와 매운탕에 모두 유혹당했고, 바로 차를 몰아 주문진으로 향했다. 우선은 횟감을 사는 것보다 먼저 내가 그리도 보고 싶어한 맑은 바닷물을 보러 출발!
연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차들이 좀 있었다. 서울에서 둔내까지 가는 길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는데, 둔내에서 주문진으로 오는 길도 살짝 막혔다. 어쨌거나 주문진에 도착. 아직 정식으로 개장하지는 않았지만 바다를 보러 온 관광객들은 꽤나 많았고, 어린 애들은 옷이 젖던 말던 물속에 이미 뛰어들어 있었다.
나는 일행들의 눈치도 전혀 보지 않고, 뒤에서 기다리던 말던 혼자 유월의 동해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발을 간지럽히는 모래에 괜히 혼자 미친놈처럼 웃기도 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냥 행복해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난 참 바다를 좋아한다. 그리고 물을 좋아한다. 술 마시고 밤이 되면 혼자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가서 물가에 앉아 술을 마시곤 한다. 그럴 땐 옆에 아무도 없어도 된다. 그저 물을 보고, 물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느낌.
유월의 동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매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동영상도 남겨두고 말이다.
주문진은 백사장이 너무 넓고 밋밋해서 오히려 바다가 심심해 보일 정도.
저 멀리까지 맑게 보이는 바다와 잔잔한 파도. 그리고 아주 화창하지는 않았지만(둔내에서는 그렇게 화창하더니 주문진에 도착하니 하늘이 뿌연색으로 변해버려서 아쉬웠다) 햇빛이 잔잔한 파도에 부딪혀 맑은 물 아래로 보이는 모래 바닥에 그림자를 만드는 모습이, 것참,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저 멀리까지 그저 모래만이 깔려있는 바닥이라니, 그리고 그 바닥이 말 그대로 아름다운 옥빛으로 빛나고 있다니.
나 혼자 바다 놀이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일행들은 "쟤 뭐하니?", "뭔 사진을 저렇게 많이 찍어?", "야! 어서 가자!"를 남발했다고 하는데,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 봤더니 다들 지친 표정으로 어서 나오라는 손짓. 괜히 미안해져서 얼른 뛰어 나왔다. 그리고 주문진 항으로 출발.
와, 정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가. 주문진 항의 주차장은 정원을 정확하게 지키기 때문에 만차가 되고 나면 주차했던 차가 나와야만 입장을 시켜준다(주차장이라면 당연한 일일지도;;). 그러다보니 주차장 입구에서 못 들어간 차들이 엄청나게 긴 줄을 만들고 서 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시간이 아까웠던 때. 슬슬 배도 고프고.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좌판이 벌어져 있다. 해삼과 문어를 팔던 아주머니. 와, 해삼이 정말 많이 올랐구나. 이제 비싸서 못 먹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당연히 과장했다;).
그렇게 좌판을 좀 구경하고 있다보니, 우리가 찾는 횟집은 이쪽이 아니란다. 난 이 거리가 횟집들이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본격적인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니 엄청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여기저기서 막 팔고 있다. 아, 보는 것마다 다 맛있어 보여서 침 줄줄. 오른쪽에 있는 생선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도루묵이란다. '말짱 도루묵'할때의 그 도루묵 맞다. 알이 꽉꽉찬 도루묵을 그냥 막 구워서 팔고 있었다.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는 생선이 아니라서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맛있게 보이더라.
시장 안에도 엄청난 인파. 휴. 만날 이렇게 장사되면 주문진 항 상인들은 떼부자될 듯.
은빛의 꽁치가 너무 신선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한 컷. 저거저거 살아서 파닥거릴 때 회쳐먹으면 얼마나 맛나는데!!
여기가 일행분의 단골집. 여쭤보니 전화 주문하면 고속버스로 보내주시기도 한단다. 엄청 기분파 사장님이 서비스를 마구마구 집어 넣어 주시는 곳.
일단 우리의 메인은 이 녀석. 자연산 우럭이다. 우럭 앞에 뭔가 다른 말이 붙었었는데, 먹어보니 어쨌든 우럭이다. 크기를 비교하는 컷을 찍지 못했는데, 어른 팔뚝보다 큰 녀석. 힘도 어마어마했다.
그 녀석이 해체되는 모습. 역시 우럭은 대가리를 떼고 나면 확 작아진다. 그래, 뭐 어떠랴. 맛만 좋으면 되지.
모든 일행들이 횟집 앞에 붙어 있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사장님에게도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나는 다시 주차장으로 올라왔다. 멀리 보이는 바다. 그리고 그 앞으로 고깃배가 한 척 지나가기에 어서 한 컷.
배가 지나가고 나니 바다에 예쁜 물결 무늬가 남았다.
애초에 우리가 산 생선과 해산물이 워낙 많았던 데다가 사장님이 서비스를 너무 많이 주셔서 회를 뜨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그 횟감들을 모두 차에 실어두고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마시러 지경 해수욕장으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해수욕장인 지경 해수욕장은 주문진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해변에 몇 개의 카페가 있는데, 우리가 들어간 곳은 '고독'이라는 곳.
커피도 맛있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직접 만드셨다는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일품인 곳. 아마 다음에 주문진을 찾게된다면 또 들르고 싶은 집일 듯.
뭐, 저 멀리 해수욕장에는 커플이 보였지만. 그렇다. 우리는 그런 것에 절대 신경쓰지 않는다.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