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첫째 날. 세밑이라 문을 연 집이 별로 없었죠. 그래서 맛난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는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습니다. 오늘은 둘째 날. 오늘도 실패하면 큰일입니다. 저도 위기 의식을 좀 느꼈습니다. 이러다 제대로된 술 한잔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기우. 여행통이신 형님도 계시고, 저의 강력한 의지도 있는데 설마 그렇게 될리가 있을까요!
#6 아홉 명 좌석이 있습니까?
스미요시 신사의 구경을 마치고는 캐널 시티로 걸어갔습니다. 하카다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 센터입니다. 맛있는 식당도 많고, 재미난 가게들도 많다고 하네요. 잠시 구경을 하다가 다들 힘들다는 원성이 자자해서 일단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Moomin이라는 카페. 도쿄점이 전세계 1호점이고 이곳이 2호점이랍니다. 핀란드의 동화 무민(Moomin)의 캐릭터를 이용한 카페입니다. 다양한 캐릭터 상품도 판매하고 있더군요. 이것저것 시켜 먹다보니 저절로 점심이 해결. 원래 점심은 다른 걸 먹고 싶었는데 말이죠.
잠시동안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다들 이곳에서 윈도우 쇼핑을 하신다길래(날씨가 정말 엄청나게 추웠습니다) 저는 지도책을 들고 시내 구경을 나섰습니다. 걷는 동안 눈도 엄청스레 내렸어요. ㅠㅠ
하지만 근처에 라쿠스이엔(樂水園)이라는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이 있다고 하니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입장료가 100엔, 녹차와 다과가 포함되면 300엔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리고 화요일이 휴무이고 공휴일도 연다고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일본에서 신정은 일반적인 공휴일과는 전혀 다른 날인 것 같습니다. 어제 밤에도 그러더니 찬바람과 눈을 홀로 맞으며 걸어온 이곳 역시 휴무. 게다가 하카다의 다른 지역으로 온 것도 아니고 아까 들렀던 스미요시 신사의 바로 뒷편 -0-
그래서 별 수 없이 제가 좋아하는 짓. 그러니까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사진도 그 때 찍은 사진이에요. 사진 속의 신사는 스미요시 신사.
별 의미는 없습니다. 멀리 캐널 시티가 보이네요. 아마 눈이 내리고 있던 중인 것 같은데, 눈은 사진에 안 잡혔어요. 그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거리. 아무리 평범해 보이더라도 제가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죠.
이런 별 의미없어 보이는 사진들 하나하나도 괜히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지난 홋카이도 여행 때에는 이런 사진이 너무 없었어요.
건너편 광고판에는 라이언킹의 광고가 있고(아마 극단 사계에서 하는 뮤지컬이겠죠?),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짐 싣는 것을 도와주고(?) 계시네요. 건너편에는 자전거들이 보이고요.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자전거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다 필름으로 찍은 것들이라 나중에 따로 정리를 할텐데요. 이 사진도 이번 여행에서 찍은 자전거 중의 하나.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요. 일본에서는 자전거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집 근처에서 이동할 때에는 자전거를 쓰는 것이 편하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도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편리하게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만 직접 겪어보진 못했어요.
캐널 시티의 입구. 정말 크긴 크더군요. 안에서 길을 잃을 뻔 했으니까요.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도대체 약속 장소를 찾기가 힘든 거 있죠. 뭐 로밍해둔 전화기가 있어서 큰 걱정은 안됐지만, 저 때문에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싫잖아요.
아, 저기 보이는 하얀 구조물. 저건 흡연 구역입니다. 일본 여행을 다니면(이제 겨우 두 번째이지만) 흡연 구역이 어딘지 확인해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다른 곳에서 담배를 피면 실례라고 하더군요. 약간은 불편하지만 꽤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서로 좋은 일이잖아요.
캐널 시티의 호수 옆 무대에서 공연을 하던 아저씨.
와인이나 기타 등등 쇼핑을 위해 텐진으로 이동했습니다. 텐진에는 백화점도 많고, 바로 이 텐진 지하 상가가 엄청 유명한 곳이래요. 하지만 1월 1일은 휴무. 모두 1월 2일부터 영업을 시작한답니다. 완전 썰렁한 지하 상가. 딱 한 군데의 백화점이 문을 열었지만... 전 쇼핑에는 관심 없어요;;;
결국 다시 하카다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정 때문에 찌롸니 형님이 너무 고생하셨어요. 이제 슬슬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됐는데, 오늘은 술도 좀 마셔야 되는데. 적당한 가게를 찾아보시겠다면서 저희들은 역에서 좀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군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결국 연락이 왔습니다. 하카다 역 근처에 요도바시 카메라는 문을 열었고, 거기에 식당가가 있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적당한 가게도 찾았다고 하십니다. 참 힘듭니다. 평소 같으면 '어디가 더 맛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도대체 문을 연 가게가 어디에 있는 거야?'를 고민해야 되는 상황이라니 말이죠.
요도바시 카메라 하다다점의 식당가에 있는 샤브샤브, 스끼야끼 가게. 1인당 요금을 내면 90분 동안 무한정 고기와 술을 주는 집입니다. 네. 중요합니다. 무/한/정.
일단 스끼야끼 양념을 위한 달걀을 깼는데, 이런! 쌍둥이입니다. 뭔가 대박 조짐인가요?
뱃속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야채들. 고기 질은 좋았어요. 일단 눈으로 보기에도 예쁘잖아요?
고기와 야채가 마구마구 투하됩니다. 나마 비루와 사케도 마구마구.
누가 찍은 사진이더라? 저도 등장하는 군요. 추가로 다른 주문도 좀더 하고, 계속 술을 추가합니다. 하지만 술은 무료라는 거. 나중엔 종업원이 '뭐 이런 애들이 다 있어?'하는 표정. 아마 우리 이후에 한국인 관광객은 받지 않을 지도?
90분 동안 열심히 먹고 마신 다음 잠깐 그 옆에 있는 테이토 스테이션에 들렀습니다. 잊지 않으셨죠? 지금 이 건물은 요도바시 카메라 건물이라는 거. 하고 싶은 게임들은 많았으나 시간이 별로 없으니... Time Crisis 4를 한 판하고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타임 크라이시스. 재밌더군요.
시간이 점점 늦어지니 숙소 근처에서 노는 것이 더 좋겠지요. 일단 고쿠라 역으로 왔습니다. 이젠 숙소까지 걸어서 움직일 수 있으니 시간이 늦어지는 것은 문제가 안되죠. 방금 전까지 그렇게 먹었으면서 라멘을 드시러 가시려는 일행 분들! 하지만 독서실처럼 1인용으로 좌석이 만들어지고 칸막이가 쳐져있는(TV 특종 뭐 그런 데서 소개된 적이 있는 그런 식의) 라멘집이라 일단은 패스.
고쿠라 역 근처에서 거하게 한잔 할 수 있을 만한 집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제와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어요. 찌롸니형이 여기저기 가게를 찾으시는 동안 저도 용기를 내 봅니다. 그리고 불이 켜진 가게로 올라갔습니다. 일단 문이 열려 있더라고요. 워낙 일찍 닫는 가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何時(なんじ)まで営業(えいぎょう)ですか?"라고 물어봤습니다. 몇시까지 영업하느냔 얘기죠. 그랬더니 새벽 다섯시까지 한답니다. 와우! 새벽 다섯시! 역시 일본에도 이런 가게는 있었어! 다음으로 우리 일행은 인원이 좀 많으니까 좌석이 있는지 물어봐야죠. "きゅう席(せき)がありますか?" 물론 문법이 맞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아홉 석이 있는지 물어본 거죠. 그랬더니 없답니다. 흑흑.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찌롸니 형님이 제 말씀을 들으시더니 그럴리가 없다고 하시면서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고는 일행들보고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자리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말이 틀렸냐고 했더니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왜 없다고 했을까요. 저를 손님으로 받기 싫었던 건 아닐까요? 엉엉엉.
어쨌든 이곳도 몇 가지 안주를 시키면 맥주와 사케는 무한정인 곳이었습니다. 무/한/정. 이것 참 좋더군요. 결국 엄청 마셨습니다. 피곤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호텔로 들어가서는 또 몇몇이 모여서 엄청 마셨습니다. 심지어 저도 눈꺼풀이 자꾸 내려와서 도망치듯 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으니까요.
그렇게 둘째 날의 밤이 저물었네요. 술 마실 곳을 저의 능력만으로 찾아내진 못했지만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더 생겼고, 제대로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여행의 마지막 날이 남았네요. 어찌보면 가장 재밌었던 날입니다. 날씨도 좋았고, 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었던 날이니까요. 사진 정리가 마저 끝나면 또 올리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