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ers 183

출근길에

출근길에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우 아름답고, 지적이고, 섹시하고, 우아하고, 젊은... 그러니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여자가 있다. 그 여자와 만나는 남자가 하나 있다. 단순한 '만남' 보다는 '사귄다'거나 '동거'한다거나 또는 '결혼'을 해도 좋다. 헌데 그 남자는 그런 완벽한 여자와 어울릴만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다. 뭐 예를 들어 나이도 많고, 외모도 별로고, 똑똑하지도,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전형적인' 그저그런 사람이다. 헌데 둘이서 '열렬히' 사랑을 한다. 남자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을 다바쳐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 순간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Litters 2006.09.06

넘칠랑 말랑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며칠 전 밤부터(아마 3일쯤 전이었던 듯) 넘칠랑 말랑했다. 잔을 살짝만 흔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날들이 계속 되고 있다. 아. 이 놈의 조울증.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커다란 한 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많은 이유들이 복합유기농이유식처럼 잘 버무려져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쏟아질 것 같은 이유따위는 아예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한 문단 안에 '이유'를 8개 쓰고 나서 네이버에 '이유'(이게 9번째)로 검색해봤더니, 조선시대 왕족 중에 한 명, 네이버 인물 정보에 교수와 기자만으로 4명의 이유가 발견됐다. 아, 삼천포. 넘쳐 흐를 것 같은 절정은 오늘 출근길의 버스. 물론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일찍 잠을 청했기 때문인지 매우 상쾌한..

Litters 2006.08.31

반신욕

아, 진짜 오랜만에 욕조에 뜨거운 물 잔뜩 받아놓고 반신욕을 했다. 원래 반신욕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욕조가 작아서 온 몸을 다 담글 수 없어서... 저절로 반신욕이 됐다. 땀을 쏙~ 빼고나서 오랜만에 때도 밀었다. 그 전에 밀었던 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구석구석. 땀을 한참 흘리고, 구석구석 때를 다 밀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더니 몸이 한 결 개운해졌다. 피부도 왠지 좋아진 것 같고. 이제 다음 목표는 방청소다. 아... 도대체 지난 번 청소가 언제였더라. 완전히 방 꼬라지가 말이 아니다. 조만간 대청소 한 번 해야지. 그 다음 목표는 인생 청소다. 내 삶이 좀 더 뽀드득 뽀드득해질 수 있도록, 쓸고 닦고 때도 밀어야 겠다. 언제적 먼지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이 구..

Litters 2006.08.28

바, 칵테일, 꿈 그리고...

늦은 퇴근. 오랜만에 혼자 찾은 바. 데킬라 더블. 호가든. 잭콕. 잭콕. 잭콕. 잭콕. B-52. 마티니. 바카디콕. 취침 꿈을 꿨다. 한 편도 아니고 여러 편을. 인디 영화 같은 분위기로 시작한 꿈은 농도짙은 애로 영화가 되었다가, 갑자기 호러물로 종결. 또 다른 꿈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고, 난 그 한 가운데서 은따를 당하고, 결국 막판에는 대판 싸우면서 끝나는 스토리. 아, 또 무슨 꿈이 있었더라. 여튼 참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꿈 속에서 만들어냈다. 내가 마신 9잔의 술이 각각 꿈으로 날아간 걸까... 어쨌거나 꿈의 맨 마지막 부분은 내가 가게 주인이랑 싸우는 부분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계산을 잘못해서 난 그 잘못된 계산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었다. 그 아저씨의 ..

Litters 2006.08.25

일일일엔

일일일선(一日一善). 내 기억이 맞다면 국민학교 다닐 때 즈음에 이런 거 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 하는 거였는데, 무슨 노트 같은 곳에 어떤 착한 일을 했는 지 적어서 선생님한테 검사도 받아야 했던 것 같다. 어머니 흰머리 뽑아드리기(뽑아 드리고 1개에 50원씩 받지 않기), 엘리베이터에서 꼬마애 대신 버튼 눌러주기, 쓰레기 주워서 쓰레기 통에 넣기 등등 일상의 아주 작은 '착한 일'을 실천하고, 그걸 기록하는 거였는데 딱히 적을 게 없어서 하교길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친구들끼리 경쟁적으로 줍고 그랬다. 그러니까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착한 일을 찾아서 하게 되더란 거다. 하지만 착한 일을 한 다음의 보상. 즉, 마음이 따뜻해 진다던가 눈빛으로 나누는 정이라던가 쌓여있던..

Litters 2006.08.24